▲용담정의 모습. 최제우가 득도를 한 곳으로, 사진의 건물은 물론 당시의 것이 아니라 복원한 것이다.
정만진
동학은 주자학적 전통으로 굳게 닫힌 전근대의 강고한 철벽에서 인권ㆍ평등ㆍ자존을 바탕으로 백성들을 깨우치고, 삶의 주체로서 민족정신을 일깨워서 근대의 문을 열었다. 봉건적 전근대의 철문을 닫고 근대의 광장을 연 것이다.
동학은 창도 초기가 도인들의 각성기라면, 중기는 교조신원운동과 교세확장, 후기는 동학농민혁명으로 전개되었다. 동학 1세교조를 사문난적으로 몰아 처형한 정부는 내적인 개혁요구와 세계사적인 변혁의 사조에 문을 굳게 닫아 걸고 있다가 강제 개항을 맞게 되었다. 결국 이같은 상황에서 동학은 제국주의의 침투에 의한 반식민지화와 국내 봉건적 관료층의 수탈로 신음하는 피압박 민중의 해방운동과 반봉건ㆍ반외세 투쟁을 위한 혁명이념으로 나타났다.
동학농민혁명은 1894년 전라도 고부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고부군수 조병갑의 가혹한 미곡 징수와 만석보의 2중적인 수세징수가 농민의 원성을 사게 되자 전봉준ㆍ김개남ㆍ손화중 등 동학교도들이 봉기함으로써 발발하였다.
세계혁명사, 예컨대 영국의 청교도혁명, 독일의 종교개혁, 미국의 독립혁명, 프랑스의 대혁명, 중국의 신해혁명, 러시아의 볼셰비키혁명은 모두 그 나라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변혁운동이었다. 우리의 경우 동학혁명을 이들의 반열에 올려도 손색이 없는 자주적인 민중혁명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