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희
정운현
최시형을 정점으로 북접이 중심이 된 동학교단은 남접 중심의 동학혁명에 참여하기로 결정하였다. 최시형은 각포의 두령들에게 9월 18일 충청도 보은의 청산(靑山)으로 모이라는 동원령을 내렸다. 신중한 성품이지만 결정하면 신속하게 대처했다. 그리고 총동원의 「초유문(招諭文)」을 발령했다.
초유문
주역에 이르기를 대재(大哉)라 건원(乾元)이여, 만물이 자시(資始)하고 지재(至哉)라 건원(乾元)이여, 만물이 자생이라 하니 사람이 그 사이에 만물의 영이 된지라. 부모는 낳고 스승은 가르치고 임금은 기르나니 그 은혜를 갚는데 있어 생삼사일(生三四日)의 도(道)가 있는 것을 알지 못하면 어찌 사람이라고 이를 수 있겠는가.
선사(先師)께서 지나간 경신년(庚申年) 천명(天命)을 받아 도를 창명하여 이미 퇴폐한 강상(綱常)을 밝히고 장차 도탄에 빠진 생령(生靈)을 구하고자 하더니 도리어 위학(僞學)이라는 지목을 받아 조난순도(遭難殉道) 하였으니 아직도 원통함을 씻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31년이라. 다행히도 한울이 이 도를 망(亡)케 하지 아니하여 서로 심법(心法)을 전하여 전국을 통한 교도가 몇 10만인지 알 수 없으되 사은(四恩)을 갚을 생각은 없고 오로지 육적(六賊)의 욕을 일삼으며 척화를 빙자하여 도리어 창궐을 일으키니 어찌 한심하지 않으리오.
돌아보건데 이 노물(老物)이 나이가 70에 가까운지라 기식(氣息)이 엄엄하되 전발(傳鉢)의 은혜를 생각하면 눈물이 옷깃에 차는 것을 견디지 못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겠도다. 이에 또 통문을 발하노니 바라건대 여러분은 이 노부의 마음을 양찰하고 기필코 회집하여 비성을 다하여 천위주광(天威黈纊)의 아래 크게 부르짖어 선사의 숙원을 쾌히 펴고 종국(宗國)의 급난에 동부할 것을 천만 바라노라. (주석 9)
최시형은 이때에 하늘의 뜻에 이르렀음을 지적하면서 북접이 남접의 동학군과 합세하여 무력항쟁에 나설 것을 명령하였다. 이로써 동학혁명은 남북접이 함께 봉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혁명 참여를 결정한 최시형은 신속하게 진영을 갖추도록 명령했다. 전경주의 포를 선봉, 정규석 포를 후군, 이종훈 포를 좌익, 이용구 포를 우익, 손병희를 종군통령으로 임명하여 각 포를 총지휘도록 하였다. 손병희는 북접군 총사령이 된 것이다.
북접 동학농민혁명군의 지역과 주도인물은 다음과 같다. (주석 10)
북접 산하 각지의 기포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