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무간도>에서 내가 좋아하는 장면. 임시 총회를 진행하며 남편에게 느끼는 죄의식, 죄책감 때문에 ‘유건명(유덕화 분)’에게 감정이입이 됐다
디스테이션
임시 총회를 하는 동안 사실 나는 완전히 '쫄았다.' 오금이 저리고 심장이 쫄깃쫄깃한 상태가 이어졌다. 내가 세운 계략이 들통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 생각뿐이었다. 그 순간 나는 이상하게도 영화 <무간도>를 보면서 감정이입이 잘 안 되던 '유건명(유덕화 분)'이 떠올랐다.
늘 '진영인(양조위 분)'의 처지에 공감했었는데, 그날은 희한하게도 내가 유건명이 된 느낌이었다. 아마도 유건명은 황 국장을 비롯한 많은 경찰 동료들에게 죄의식과 죄책감을 느꼈으리라. 임시 총회 내내 내가 남편의 눈도 못 마주친 것처럼.
하지만 내가 유건명이 된 건 다 이유가 있었다. 나이 든 아줌마, 아저씨들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을기업 회원 혹은 조합원이라고 불리든 실용론자라고 명명되든, 모든 명칭을 떠나 그들은 나의 동네 친구들, 언니들, 동생들의 부모였다. 내가 뒷산에서 소에게 풀을 먹이고 동네로 돌아올 때, 삶은 감자 한 알을 억지로 내 손에 쥐여 주던 그 사람들이었다.
남편에겐 쫌생이 집단인지 몰라도, 밉든 곱든 그들은 내 존재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다. 남편의 시각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남편에겐 그들이 현재를 토대로 자신과 미래를 함께할 사람들이라 쩨쩨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경우엔 아줌마, 아저씨들은 내 과거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들이 선별기 작업을 하고, 밤 껍데기를 깎는 미래의 모습이 남편의 망막에 새겨져 있다면, 내 눈에는 과거·현재·미래의 모습 모두가 합쳐지고 섞인 그들이 보이는 것이다. 아쉽게도 남편은 죽었다 깨어나도 내 눈에 비치는 광경을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어쨌든 뭔가 재밌고 집중할 수 있는, 일이지만 즐길 수 있는 여가 같은 일을 마을에 제공하려던 게 원래의 목적이었다. 마을기업을 하려는 애초의 취지가 그러했는데, 명분론자들에게 마을은 사라지고 기업만 남아 있는 듯했다. 그리고 기업의 부담마저 고 연령층 농부들과 나눠 가지려는 태도를 보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그들과 결별하고 말았다.
다음 타깃은 남편
"위원장 니가 똑디 아는 거또 없자나. 밤 농사 몇 번 지었다꼬 이래 뭐를 아는 척을 해샀노."
무산댁이 계속해서 남편을 공격했다. 다음날 열린 임시 총회에서 공격 대상은 남편으로 정해져 있었다. 남편이 위원장이라고 불린 이유는 '마을기업 추진 위원장'이라는 감투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상머리에 앉아가꼬 요래조래 쌩지랄을 다 해보이까네, 머 다 아는 거 같재? 위원장, 밤 선별기 만지는 봤나? 저온콘테이넌동 지랄이동 그거는 우째 사용할 낀데? 여서 그거 할 쭐 아는 인간 하나도 없다 아이가."
무산댁의 기동력을 앞세운 전격전에 남편은 방어 능력을 잃고 사고 체계까지 마비된 듯했다.
"어, 그러니까, 일단은 어, 시행착오의 과정을 어, 좀 거쳐야 할 것 같,"
"됐다 마. 위원장 니 말은 내 돈 300마넌 받아가꼬 연습을 해보게따 요 말 아이가. 내가 살믄서 똑디 배운 게 딱 하나 있다 아이가. 연습은 연습장에만 해야 된다 요건 기라. 우리 둘째 기철이가 국민학교 댕길 쩍에, 한글 연습을 연습장에 안 하고 방 벼루빡(벽)에다 해가꼬, 내가 귀빵매이(귀싸대기)를 쌔리뿌따 아이가. 우리한테 300마너씩 받아가꼬 벼루빡에다 연습을 해뿐다 이 말인데, 잘못되믄 위원장 귀빵매이 다 찢어지뿔 낀데 괜찮겄나?"
전날 반장을 공격한 경험을 쌓은 무산댁은 내가 만든 시나리오를 자유자재로 각색해서 자신만의 세계를 펼치고 있었다. 사실 무산댁이 만들어 낸 것은, 내가 쓴 시나리오에 담긴 인과적 세계관에 비해 훨씬 '레알'하고 날것에 가까운 '찐' 세계관이었다.
남편은 벌써 귀싸대기를 수십 대 얻어맞은 듯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고, 애꿎은 정수리만 벅벅 긁어댔다. 시설 장비들의 설명서와 견적서 같은 상징의 세계에서 우아하게 노닐다가, 무산댁이 쳐놓은 실재의 세계인 거미집에 포획되고 나니, 아찔하고 현기증이 나는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