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운 최제우 동상수운 최제우 선생 동상이다.
김환대
각지 도인들에게 칼 노래를 가르쳐주던 해월은 9월 한가위가 가까워 오자 추석을 집안 식구와 함께 보낼 심산으로 검곡에 돌아왔다. 팔월 열 나흘날 아침에도 그는 동틀 때부터 연못에 나가 목욕을 하고 뜰과 마당을 깨끗이 쓴 후에 수심정기하고 정좌하였다. 강령주문(降靈呪文)을 3천독하고 심고하는 중에 피뜩 영감이 일어났다. 즉 용담정에 계신 스승님이 자기를 부르는 것 같았다. 그가 곧 조반도 먹지 않고 사십리 길을 달려 용담에 이르니 스승님은 방에 홀로 앉아 묵념하고 있었다. 해월이 인사를 올리니 스승님은 회색이 만면 반겨 주신다.
"해월 그대가 웬일인가? 내일이 추석인데 왜 집에서 명절을 쇠지 않고 오나?"
"네. 추석을 쇠려고 집에 있다가 심고 중에 선생님을 뵙고 싶어서 달려오는 길입니다."
"오, 그랬나? 아무튼 잘 왔네. 실은 나도 그대를 보고 싶었네."
해월이 수운의 뒤를 따라 도장(道場)에 들어가니 방바닥에 돗자리가 한 장 깔려 있었다. 전에 없던 일에 해월은 영문을 몰라 당황하였다.
"해월. 저리로 않게."
해월이 선생님이 가리키는 돗자리 위에 무릎을 꿇고 앉으니 스승님이 갑자기 눈을 부릅뜨고 정면으로 쏘아 보시는데 두 눈에 섬광이 번쩍이는 듯 하였다. 한참 그렇게 보고 있더니 이윽고
"몸을 움직여 보라!" 하는 명령이 떨어졌다. 해월은 움직이려고 전신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팔다리는 물론 입까지 조금도 움직여지지 않는다. 해월이 움직일려고 애쓰는 것을 바라보던 스승님은 다시 굳은 표정을 풀고 빙그레 웃으신다.
"이 사람아, 움직이라니까 왜 그러고 있나?"
말이 끝나자 비로소 해월의 몸이 풀어져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선생님, 죄송하옵니다. 어쩐 일인지 선생님께서 저를 쏘아 보신 뒤로 몸을 통 움직일 수가 없고 말도 나오지 않았사옵니다."
"그게 바로 그대 마음이 내 마음과 하나가 된 증거일세. 천지 만물은 본래 한 마음 한 기운인데, 세상 사람들이 이를 모르고 각각 자기의 육신에서 나오는 사리사욕에 마음을 빼앗겨 서로의 마음과 기운이 통하지 않는 것일세. 나와 그대는 이미 도력(道力)으로 그 기운을 통하였으니 내 마음이 곧 그대 마음이어서 한마음처럼 움직여진다는 것이 증명되었으니 다행이야."
말씀을 마치자 스승님은 「수심정기(守心正氣)」넉자가 적힌 종이 한 장과 「용담수류사해원ㆍ검악춘회일세화(龍潭水流四海源ㆍ劍岳春回 一世花)」라 쓴 족자 한 장을 내어주신다.
"이것이 그대의 장래이니 잘 보전하게. 그리고 이제부터는 그대가 나를 대신해서 무극대도의 도통을 이어받았네."
해월은 정신이 아득하고 몸이 떨려 어쩔 줄 몰랐다.
"선생님! 이게 무슨 말씀이옵니까? 저는 무식하고 천한 사람이옵니다. 저 같은 놈더러 무극대도의 대통을 이으라 하심은 천만 부당한 말씀인 줄 아옵니다."
"아니야. '사시지서성공자거(四時之序成功者去)'라 하였으니 성공한 자는 가고, 새 사람이 나와 일을 맡는 것이 천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나? 나는 가야 할 때가 되었나 보네. 그대에게 모든 일을 당부하고 갈 터이니 그리 알게."
해월은 더욱 참담하였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선생님! 가신다니요? 어디로 가신단 말씀입니까? 저희들을 두고 가신다니 이제 어찌 된 일이옵니까?"
눈물이 왈칵 쏟아져서 그는 방바닥에 엎디어 울었다. 슬픔이 복바쳐 어쩔 줄 모르는 제자를 물끄러미 지켜보던 스승님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해월, 슬퍼할 것 없네. 이것이 모두 천명(天命)이라네. 후천 5만년의 개벽운수가 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천운(天運)이야. 부디 그대는 천명을 따르게나." (주석 2)
주석
1> 표영삼, 앞의 책, 27쪽.
2> 최동희, 『민중의 메시아 해월 최시형』, 56~59쪽, 태극출판사,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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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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