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 2세 교조 해월 최시형수운 최제우로부터 도통을 물려받아 동학을 민중 속으로 더 넓게 전포한 해월 최시형 선생 (이 사진은 해월 선생이 처형 당하기 직전 찍은 사진에, 1900년에 몸통 부분을 편집하여 제작한 사진이다)
박길수
지상에서 가장 소중한 단어 한 가지 만을 선택한다면?
인권ㆍ가족ㆍ자유ㆍ평등ㆍ정의ㆍ권리ㆍ평화ㆍ환경ㆍ윤리ㆍ도덕ㆍ문명ㆍ문화ㆍ질서 등 많은 단어가 연상될 것이다. 모두 소중한 가치를 지닌 용어들이다. 하지만 베스트에는 속하지 않는다. '생명'이 전제되지 않으면 아무런 효용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생명이 없는 사회와 지구를 상상하기란 어렵다. '상상'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생명의 반대말은 전쟁일 것이다. 전쟁은 인간의 생명에서부터 모든 것을 휩쓸어 가 버린다. 한때 한반도 상공에 스멀거리던 핵전쟁의 위험은 인간은 물론 이땅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동시에 멸살시킨다. 지금 북한이나 미국을 비롯 각국이 갖고 있는 각종 핵무기는 여차하면 한민족과 인류를 완벽하게 그리고 불가역적으로 파멸시키고도 남는다.
이에 비해 60여 년 전 이땅에서 벌어진 6ㆍ25전쟁은 어쩌면 '석기시대의 전쟁'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운이 좋으면 목숨과 재산을 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 각국이 보유한 핵무기의 규모는 지구를 완벽하게 파멸시키는데 모자라지 않는다. 인류 과학문명의 극대적 발전이 인류를 완벽하게 파멸하는 우매함에 이르렀다는 것은 21세기 인류가 석기시대 인간들보다 결코 정신사적으로 진보하지 못하였음을 입증한다. 석기인들은 기껏 돌맹이를 무기로 쓰거나 잡은 짐승을 빼앗는 수준의 싸움이었다. 북핵문제 해결을 비롯하여 각국이 보유한 핵(탄두)도 모두 폐기하는 국제적인 캠페인이 전개돼야 할 것이다.
인공지능(AI)을 개발한 인간이 마치 더듬이를 잃은 곤충처럼, 21세기의 인류는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방황하고 있는 형국이다. 지구의 한계를 모르는 채 무한적인 물질문명의 추구는 환경파괴로 나타나 이제 그 종점에 이르렀다. 공산주의는 소멸하고 자본주의는 위기를 맞고 있다.
영국의 호킨스 박사는 호모사피엔스가 멸종을 피하려면 100년 안에 다른 행성을 찾아서 지구를 떠나야 한다고 했지만, 우리는 다른 행성을 찾을 과학기술도 경제적 역량도 없다. 여기에 위기의 본질이 있다. 이것은 바로 '지구적인 위기'에 속한다.
"일체의 이론은 회색이고 생명의 황금수(黃金樹)만이 푸른빛이다." - 괴테, 『파우스트』
"생명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생명은 되돌아 오지도 않는다." - 바슐라르, 『꿈꿀권리』
"살려고 하고 그 존재는 유지하려고 하는 것은 모든 생명체의 고유한 성질이다."- 프롬, 『인간의 마음』
"나는 나무에서 잎사귀 하나라도 의미 없이는 따지 않는다. 한 포기의 들꽃도 꺾지 않는다. 벌레도 밟지 않도록 조심한다. 여름밤 램프 밑에서 일할 때 벌레와 날개가 타서 책상 위에 떨어지는 것 보다는 차라리 창문을 닫고 무더운 공기를 호흡한다." - 슈바이처, 『나의 생애와 사상』
"생명은 자기 자신만으로는 완결이 안 되는 / 만들어짐의 과정.// 꽃도/ 암꽃술과 수술로 되어 있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고// 벌레나 바람이 찾아와 암꽃술과 수술을 연결하는 것.// 생명은/ 제 안에 결여를 안고/ 그것을 타자가 채워 주는 것." - 요시나 히로시, 「생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