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는 총학생회장이 될 수 있지만, 통합진보당은 좀 그렇다'는 여학우의 말처럼 통합진보당과 페미니즘 논란은 우리를 침몰시켰다.
unsplash
그렇게 올라오는 글들은 나에게 실존적 위협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정문 앞에서 홍보 전단을 나눠주는데 덩치 큰 남자가 나를 한참이나 째려보고 가는 일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교선전전을 하고 있는데, 경영학과 학과 점퍼를 입은 여학우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후보님, 에브리타임에 이상한 글이 많이 올라와서 힘드시겠어요. 저는 후보님 진짜 지지해요. 저 근데, 정후보님 통합진보당이라던데..."
그때의 날씨와 공기, 지기 시작하는 해와 해명을 바라는 눈빛은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박혀 있다. 페미니스트 후보는 지지해도 통합진보당을 지지하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다는 눈빛. 페미니스트는 총학생회장이 될 수 있지만, 통합진보당은 좀 그렇다는 눈빛.
결국 그 선거는 떨어졌다. 통합진보당과 페미니스트 논란만이 이유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영향이 아주 클 것이라고 확신했다. 팔이 안으로 굽어서가 아니라 공약도 우리가 나았고, 선거운동도 우리가 더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선거운동을 하면서 상대 후보들을 본 기억이 많이 없었다.
성인권위원회에서 총학생회 퀴어퍼레이드 참석에 대해 질의했을 때 상대 후보는 합의가 필요하다고 했고, 우리는 가겠다고 했다. 우리는 교육권 투쟁 공약이 있었고, 상대는 없었다. 하지만 통합진보당과 페미니즘 논란이 우리를 침몰시켰다.
이런 일은 우리 학교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타 대학교에서는 몇 년 전 총학생회장 후보 등록을 할 때, 정당과 시민단체 가입 이력을 쓰게 하는 선거규약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총학생회장 후보가 국제앰네스티나 환경운동연합에 가입한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그러나 통합진보당이나 민중당 그와 관련된 정치 단체에 가입한 것은 문제가 됐다. 대다수 사람은 당당하면 쓰면 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내가 당당하다고 해서 사상과 정치 활동에 대한 사회적 혐오를 피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시 나는 "후보님, 에브리타임에 이상한 글이 너무 많이 올라와서 힘드시겠어요. 저는 후보님 진짜 지지해요. 그런데 정후보님 통합진보당이라던데"라며 말끝을 흐리던 여학우에게, "그가 통합진보당 당원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총학생회장직을 수행하는 데 당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학교와 학우들을 위해서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달라"고 했다.
그 뒤로 종종 그때 일에 대해 생각한다. 페미니스트가 총학생회장이 되는 것은 아무 문제 없지만, 통합진보당 당원이었던 사람이 총학생회장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해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선한 나의 지지자 여학우에 대해서.
그때는 2018년 말이었고, 왜 통합진보당 당원, 페미니스트가 학생회장이 되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한 논의조차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고, 증오 선동을 있는 그대로 온몸으로 맞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 차별금지법안의 차별 금지 사유로는 '사상'이 있다.
차별금지법이 입법된다고 해서 에브리타임에 올라오는 증오 선동을 전부 처벌하고 삭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익명 커뮤니티 여론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왜' 페미니스트나 통합진보당 당원이 총학생회장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지 토론을 시작은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페미니스트이지만 운동권과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나의 지지자 여학우와 같은 사람들에게 개인의 정치적 신념과 사상 역시 페미니즘과 마찬가지로 차별금지법이 보호하는 개인의 자유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통진 페미'가 총학생회장이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