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처럼 쫘악~ 퍼지는가 싶더니 이내 꼬꾸라져버리는 국수 면발들.
안소민
엄마는 언젠가부터 국수를 먹을 때면, 꼭 엄마의 이모할머니 이야기를 하신다. 아마도 이모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부터였을 것이다. 이모할머니라고는 해도 엄마에게는 친정엄마나 마찬가지인 분이다. 엄마는 다섯 살 때, 엄마를 여의었다. 같은 동네에 사시던 이모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그 이모할머니는 국수를 무척 좋아하셨단다.
"엄마는 국수 보면 이모할머니 생각 나. 이모할머니가 엄마한테 늘 말씀하셨거든. 나중에 자기는 국수 한 그릇이면 된다고. 나중에 자기가 집 놀러오면, 뭐 이것저것 음식 준비할 필요 없이, 그냥 국수 한 그릇만 주면 된다고 하셨어."
아무리 친정 식구들이라고는 하나, 직장 다니며 고만고만한 세 아이를 키우는 상황에 오랜만에 오신 고향 어르신들 상차림 준비하는 것도 부담이 될 거라는 것을 이모할머니는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미리 '국수 한 그릇이면 된다'고 못 박으셨던 것이다.
"이모할머니는 푹 퍼진 국수를 좋아하셨어. 정말 푹~ 퍼진 국수. 국수 삶으면 그냥 손가락으로 집어서 드실 정도로 좋아하셨지."
"... 그런데 왜 이모할머니는 퍼진 국수를 좋아하셨어요? 사람들은 대개 퍼진 국수 안 좋아하시는데."
내가 묻자, 엄마는 잠시 생각하시는 듯했다.
"글쎄다..."
"엄마, 혹시 이런 거 아닐까? 이모할머니가 젊은 시절에 식구들 국수 다 만든 뒤에 나중에 당신이 먹으려고 보니까 국수가 다 퍼져있었던 거지. 그런데 그걸 드시다 보니 익숙해져서 나중에는 좋아하시게 된 거 아닐까?"
"글쎄... 모르겠구나."
내 그럴듯한(?) 추리에도 엄마는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한 번도 물어보질 않았네. 왜 퍼진 국수를 좋아하시는지."
"... 궁금하네 엄마. 한번 물어보시지 그랬어요? 왜 퍼진 국수 좋아하냐고."
"... 그러게 말이다. 국수를 그렇게나 좋아하셨는데... 한 번도 만들어드리지도 못하고..."
엄마의 이모할머니 국수 이야기는 늘 이렇듯 회한으로 끝난다. 이모할머니가 그렇게나 좋아하는 국수를 한 번도 대접해드리지 못했다는 것이 엄마의 가슴에 늘 죄책감과 후회로 남아있다. 비빔국수를 유난히 좋아했다는 이모할머니. 국수 한 그릇 만드는 게 그리 어렵고 힘든 일은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내 기억에 이모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셨던 기억은 거의 없다. 친할머니가 우리집에 자주 오셨던 것에 비하면 이모할머니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까 말까다. 정말 어쩌다 집에 오셨어도 이모할머니는 가만히 쉬는 법이 없었다. 엄마의 퇴근을 기다리며 집 청소며 빨래 개기, 저녁식사 준비, 우리들 도시락 설거지 하기에 바쁘셨다. 그리고는 엄마가 오기 전, 우리들을 불러놓고 당부하셨다.
"엄마 말씀 잘 들어야 한다. 알았지? 엄마 힘들게 하면 안 돼. 알았지?"
이모할머니는 저녁밥만 잡숫고 일찍 주무셨다. 오랜만에 만난 조카딸이랑 긴긴 수다를 떨 법도 하건만, 마치 이 집에 자취를 남겨서는 안 된다는 듯 그렇게 조용히 하룻밤 주무시고 가셨다. 다음날 엄마가 출근하기 전, 일찌감치 집을 나선 이모할머니. 그랬다. 엄마로서도 국수를 만들어드릴 시간은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