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초기와 과실 수확기의 결합
노일영
그런데 농촌에선 아주 소중한 장비라 할 수 있는 예초기 앞에다 이제 과실 수확기까지 부착하게 되었으니, 예초기와 수확기의 결합은 6차 산업을 선도할 최첨단의 기계로 느껴진 것이다. 사실 최첨단의 기계가 아니라도 좋았다. 그저 맨손과 나뭇가지 같은 도구에서 벗어난 것만 해도 다들 흥분으로 가슴이 벅차올랐기 때문이다. 우리는 원시인이 아니라 문명인이다, 이런 느낌이었다.
작업 3일 차부터 모든 것이 획기적으로 변했다. 수확기는 열심히 나무를 흔들어댔고, 운반조는 깔깔거릴 시간도 없었고, 선별조는 거의 공중부양의 상태로 작업에 임했으며, 산수유 제피기에 길들여진 기계조는 침묵 속에서 몸을 움직였다. 나 혼자뿐인 세척조가 바빠지자 깍두기인 남편이 거들기 시작했는데,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이 남자는 농촌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어쨌거나 그제야 산수유나무는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었다. 산수유나무는 마을 출신 독지가 한 분이 동네 살림에 보탬이 되라고 심었건만, 그동안 동네의 갈등에 보탬이 된 기구한 팔자였다. 나무는 꽃과 열매 때문에 가끔 주목을 받았을 뿐, 농부의 관점에서 보자면 논밭의 작물에 괴상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심술궂은 존재로 여겨졌다.
물론 산수유나무는 처음에 마을로 와서 대지에 뿌리를 내릴 때만 해도 야심만만했다. 내 열매로 저 아저씨의 낫도 사주고, 이 아줌마의 자식들에게 용돈도 좀 주고, 마을 잔치 때 묵직한 금일봉도 건네고, 뭐 좀 더 해줄 것 없나, 이런 마음가짐이었다.
하지만 산수유의 야망은 시대를 잘못 만났다. 자신의 꿈을 펼치려면 공동체의 도움이 필요했는데, 마을은 존재하지만 공동체는 사라지고 있는 그런 시점이었다. 마을 주민들의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각자의 농사일을 하기도 벅찬 시기에 접어들었으므로 산수유나무의 소망은 무모한 야욕이 돼버린 것이다.
500그루가 넘는 산수유나무의 열매를 털어서, 말리거나 효소를 담고 식초를 만드는 모든 작업에는 협동체의 바지런한 손길이 필요한 법이다. 더구나 산수유 열매의 씨앗에는 독성이 있어서, 차의 재료로 만들든 효소나 식초로 만들든, 무조건 씨를 제거해야 한다. 그런데 산수유 제피기가 없다면, 이렇게 씨를 빼는 일은 바늘구멍으로 낙타를 뽑아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작업이다.
산수유나무 오욕의 역사
아무튼 산수유나무는 거의 20년 동안 마을에서 애물단지 노릇을 톡톡히 했다. 이 열매들을 마을 공동의 소득원으로 만들 구심점이 없었던 터라, 주민들은 자신이 먹을 정도만 조금씩 땄고, 열매의 대다수를 겨우내 나무에다 남겨 두길 고집했다.
결국 봄이 올 때까지 산수유나무는 감시의 대상이었다. 누군가 산수유 열매에 다가가면, 어디선가 어김없이 이런 내용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거기, 누군데 우리 마을 재산에 손을 댈라 카노!"
산수유 열매는 우리 마을의 경제적 재산이 아니라 관상용 자산이었다. 마을 주민들 사이에는 열매를 한 가구당 딱 한 번 따야 한다는 암묵적 규칙이 있다. 이 규칙을 깨는 순간 어떤 방식으로든 처벌의 순간이 닥쳐온다.
가장 흔하지만 강력한 처벌이 도둑질이나 하는 시시한 인간으로 회자되는 것이다. 산수유 열매를 손에 한줌 정도만 땄다고 해도, 농번기가 되면 잊히지만, 농한기에는 두고두고 좀도둑으로 입방아에 오르내려야 한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나는 겨울이 되면 산수유나무 주변에는 아예 얼쩡거리지 않았다. 주민의 대부분도 나와 비슷하게 행동했다. 산수유 열매는 눈앞에 있는데, 손만 뻗으면 쥘 수 있는데, 남자한테 참 좋은데, 남자한테 정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은 없는데, 직접 말하기도 그런데, 금단의 과실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가질 수 없는 산수유 열매를 누가 따 가는 걸 다들 견딜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는 이 모든 구시대의 악습이 사라지고, 협동과 공동체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생성되기 시작하는 듯했다. 산수유나무의 소망이 실현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사실상 과실 수확기와 산수유 제피기 같은 기계의 승리였다. 왜냐하면 우리는 산수유 작업을 하는 도중에 분열과 내분에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이 진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을기업의 회원들이 기계에게 진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2
함양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살다가
함양으로 귀농함
공유하기
남자한테 정말 좋은데... 이 마을에선 금단의 과실이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