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나는 이 이야기를 공교육을 받는 12년 동안 지겹게 들을 수 있었다.
픽사베이
표준어의 정의를 처음 배운 것은 초등학교 교과과정에서였다.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라는 정의에 나는 속으로 '쳇, 그러면 사투리 쓰는 나는 교양이 없다는 건가' 하며 심통이 났었다. 그렇지만 동시에 마음 한 켠에는 '서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자리 잡았다.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나는 이 이야기를 공교육을 받는 12년 동안 지겹게 들을 수 있었다. 일종의 격언처럼 통용되는 이 이야기는 '탈제주'이자 '인서울'로 수렴된다. 사람 살 곳이 아닌 땅을 벗어나, 저기 꿈과 행복이 있는 서울로 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입시가 끝나고,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친구는 지역에 남았다. 가장 먼저 마음의 문이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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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동안 열패감에 빠졌다. 미디어에서는 '지잡대(지방의 잡스러운 대학)'라는 말이 떠돌아다녔고, 공교육 과정 내내 인서울과 지방대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해 들었던 마음은 수시로 나를 움츠러들게 했다. 한때 '로컬 콘텐츠' 흐름을 타고 지방에서 나고 자란 것을 어드밴티지로 삼아보고자 했으나, 움츠러든 마음은 그런 자신감보다 훨씬 더 자주 튀어나왔다.
2019년 국가인권위가 진행한 국가인권실태조사에 따르면, 차별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21.3%가 학력·학벌, 16.9%가 출신 지역을 이유로 차별받았다고 답했다. 우리 사회 내 가장 심각한 차별을 묻는 질문에서도 32.5%가 학력·학벌 차별, 24.7%가 출신 지역 차별이라 답했다. 많은 한국인이 학력·학벌, 출신 지역 차별이 심각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학력·학벌 차별은 여전히 '노력에 따른 공정한 결과' 정도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그러나 직무와 학벌이 반드시 연관성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2019년 6월 고용노동부의 '블라인드 채용 도입 후 SKY 출신 줄고 비수도권 대학 비중 늘어'에 따르면, 공공기관에서 도입된 나이, 성별, 학벌, 외모 등을 보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했을 때 명문대 출신의 비율이 4.8%p(15.3%→10.5%) 감소하고, 비수도권 대학 출신 비율이 4.7%p(38.5%→43.2%) 증가했다는 지표를 보면, 채용 시에 '학벌'은 그리 좋은 평가 기준이 될 수 없을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