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일요일 오후, 수원역 앞에서 미얀마 이주민들이 미얀마의 상황을 알리기 위한 행동을 하고 있다.
다산인권센터
나는 민아웅씨에게 쿠데타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에 대해 물었다. 그는 2007년 샤프란 혁명 당시 미얀마에서 활동한 전력이 있다고 하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저는 미얀마가 민주주의의 싹을 틔웠던 2010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에 있었습니다. 제가 미얀마에 있을 때 미얀마는 늘 군부의 독재 아래 있었습니다. 점차 민주주의에 가까워지는 미얀마를 보며 다시 돌아갈 희망을 가졌는데 코로나와 군부 독재로 인해 돌아가지 못하게 됐습니다. (민주주의가) 조금만 일어서려고 하면 왜 그렇게 짓밟는지 모르겠어요. 가족이 보고 싶습니다.
원래는 제가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보호소를 나오고 나서 눈물이 많아졌어요. 누군가 눈물만 흘려도 같이 눈물이 납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그들의 죽음을 그냥 무의미하게 흘려 보내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번 혁명은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민아웅씨는 2021년 미얀마 쿠데타 이후 서울 미얀마 대사
관과 중국 대사관,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미얀마 사람들과 시위를 했다. 지금 미얀마에서 벌어지는 군부쿠데타는 모국에서 민주주의 경험을 하지 못한 그에게는 과거로의 회귀나 다름 없었다.
통역을 한 미얀마인 메이타씨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그동안 우리는 작고 크게 계속 저항해 왔습니다. 그중에서도 88항쟁(1988년)은 대규모 혁명이었죠. 그때는 소셜미디어도 없었고 40일 만에 끝났어요. 저항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어요. 88항쟁 때는 3000여 명의 사람이 죽고 전 국민이 다 나왔지만 군부에서 공무원과 교사들 복귀하라고 할 때 사람들은 학교로 복귀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그들도(공무원과 교사들) 복귀 안 하고 시민불복종(CDM) 옷을 입고 있어요. 전 세계 미얀마 사람들이 어려운 가정에 돈을 보내주고 있어요. 희망이 있는 거죠."
광주민주화운동은 미얀마와 우리를 잇는 아픈 기억이다. 보편적 인류애 위에 공통의 경험이 더 깊은 공감과 연대를 만든다. 우리가 경험한 민주주의는 미얀마 사람들이 마땅히 누려야 했다. 어떤 단어로도 치환될 수 없는 '인간'이라는 공통분모 안에 그들과 우리 사이에 남아있는 양심이 지금의 싸움을 속히 종식시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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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가 일어서면 왜 이렇게 짓밟는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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