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비료를 나누는 모습
노일영
[사례2] 원주민-귀농·귀촌인 갈등
아니, 땅을 샀으면 측량을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닙니까? 측량 한 번 했다고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저를 원수로 여기면 제가 여기서 어떻게 살겠습니까. 경계 측량을 신청하고 2주 정도가 지나니까 측량팀이 왔어요. 기사들이 GPS 측량장비를 설치하는 동안 아내와 저는 톱으로 밤나무 가지들을 잘라 냈죠. 측량 경계 쪽으로 시야를 확보하려면 필요한 작업이라더군요.
측량 기사 한 분이 붉은색 경계 말뚝들이 들어 있는 배낭 하나와 망치 하나를 제게 건네면서 그러더군요. 제가 직접 말뚝을 박아야 경계를 정확히 알 거라고. 그러면서 제 땅이 일제강점기 이후로 측량을 하지 않아서 제가 알고 있는 땅의 경계와 좀 많이 다를 수도 있다고.
그래서 제가 물었죠. 제게 이 땅을 판 사람이 얘기한 것보다 땅 크기가 훨씬 많이 줄어들 수도 있는지. 그러니까 그분이 그러더라구요. 줄어들 수도 있고 커질 수도 있는데, 복불복이라고. 그러면서 측량 결과에 대해서는 양해를 좀 해달라더군요. 자기들은 측량 결과를 어떻게 할 수 없다고.
경계 측량이 진행되는 동안 늘 심심한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더군요. 주민이라고 해봤자 얼마 되지도 않는 촌구석이라 흘레붙은 개들만 있어도 구경꾼들이 몰려들 지경인데, 일제강점기 이후 처음으로 측량을 한다니 얼마나 재미난 구경거리였겠습니까. 측량 기사의 지시에 따라 제가 땅바닥에다 말뚝을 하나씩 박을 때마다 곳곳에서 탄식과 참견과 고함이 터져 나왔어요.
측량 현장은 마치 각본 없는 생방송 리얼 버라이어티 쇼나 운동 시합 생중계 같았죠. 낮술을 한잔 걸친 불그레한 얼굴로 한 손엔 소주병을 든 이현승(가명)씨의 고함은 비명에 가까웠어요. 그도 그럴 것이, 측량을 하고 있던 제 전답 두 필지가 그 양반의 땅 사이에 끼어 있었기 때문이죠.
경계 말뚝 62개를 꽂는데 3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지만 마을 주민 누구도 자리를 안 뜨더라구요. 바닥에 퍼질러 앉기도 하고 나무에 기대기도 하고 술을 마시면서도 다들 두 눈만은 부릅뜨고 있었는데 분위기가 살벌하더군요. 제 땅의 경계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곳저곳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튀어나와서 당황스럽더라구요.
"뭐 할라꼬 측량을 하노. 그냥 땅 살 때 들은 대로 그 크기로 알고 있으면 되지."
"돈이 참 많은 갑네. 땅 판 사람 말 안 믿고 저 카는 거 보면."
측량 결과는 저를 도시에서 온 싸가지 없는 새끼로 만들기에 충분하더군요. 백 평 정도의 이현승씨 밭 한 다랑이가 제 땅이 되고, 쓸모없는 산비탈의 제 땅 서른 평가량이 이현승씨 소유로 바뀌었으니까요. 당혹해한 건 저뿐만이 아니라 측량 기사들도 마찬가지였죠. 이현승씨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시비를 걸기 시작하자 기사들은 재빨리 짐을 싸서 자리를 뜨더군요.
측량팀이 부리나케 떠나고 난 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죠. 처음엔 사실 측량의 결과가 지나치게 편파적이라 나 역시 관습에 무릎을 꿇고 백기를 들고 싶었어요. 누군가가 그냥 우회적으로 친절하게 항복하라고 한마디만 해줬다면 버티는 척하다가 웃으며 투항했을 겁니다. 귀농하기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도 늘 관행에 굴복했으니까요.
그런데 다들 저를 노려보기만 할 뿐 말을 안 하더라구요. 그건 마치 동네 주민들이 침묵을 통해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이 측량은 무효다 뭐 이런 침묵이었죠. 제가 직장에서 그런 꼴 당하기 싫어서 시골로 내려온 건데 이게 뭔가 싶더니, 갑자기 가슴 속에서 뭔가 훅 올라오더라구요. 그래, 진흙탕 개싸움 한번 해보자 이런 마음이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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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들과 귀농·귀촌인들의 갈등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측량을 통해 땅의 경계가 바뀌는 부분이었다. 귀농·귀촌인들로서는 자신이 돈을 들여 산 땅의 크기를 명확히 알고 싶은 게 당연하지만, 원주민들의 관점에서는 오랜 세월 관습적으로 알고 있던 토지의 경계가 갑자기 변하는 것에 거부감이 드는 것이다. 더구나 자신의 것이라고 알고 오랜 세월 농사를 지은 땅이 측량을 통해 난데없이 남의 것으로 변해 버린다면, 농부의 처지에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리산의식주연구회의 회원들은 토론을 통해 이런 종류의 수많은 갈등을 어떻게 잘 해결할 수 있을지부터 의논했다. 사실 별다른 뾰족한 수는 없었다. 원주민들 사이의 갈등은 세월을 통과하며 워낙에 앙금이 깊었고, 원주민들과 귀농·귀촌인들의 갈등을 초래하는 문화적 차이는 너무 컸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을을 파괴로 몰아가는 갈등들을 방치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일단은 함께 노동하는 시간을 가져보자는 결정을 내렸다. 마을 주민들이 연구회의 결정을 수용할지 거부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 다음주 월요일(5월 24일) 3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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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하자 들이닥친 원주민들... 진흙탕 개싸움 한번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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