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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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국어 수업, 교재로 건네준 책을 2분 만에 20페이지나 읽어내는 괴물 같은 소년들이 있다. 속독에 능한 우등생만 모아놓은 교실인 걸까. 그렇다고 하기엔 이 수업을 담당한 교사의 평가가 묘하다.
"소년들이 초능력을 발휘하지 않을 독서 방법은 무엇일까. 첫 수업은 이렇게 실패했다."
인생이 절반에 이르는 시간 동안 공립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일해온 서현숙 작가는 2019년 봄, 우연한 계기로 약 1년 동안 매주 금요일 두 시간씩 소년원 국어 수업을 맡게 된다. 수업을 듣는 대상은 소년원 입소자 중에서도 중학교도 채 마치지 못한 채 이곳에 들어오게 된 10대~20대 초반의 소년들.
애초 이 수업은 '의무교육단계 미취학·학업중단학생 학습지원 시범사업'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 검정고시를 치지 않고도 학력을 인정받을 수도 있도록 하는 제도의 일환이었다. 사회의 시간을 소년원 안에서 갈음하는 셈이다.
그런 무게를 지닌 수업이기에, 서현숙 작가는 첫 강의를 앞두고 고심을 거듭해 소년들과 함께 읽어볼 책을 10권 골라간다. '틀림 없이 재밌어할 것'이라는 설렘을 품고. 하지만 그 기대는 시작부터 깨진다. '2분 만에 20페이지나 읽는 초능력'이라고 농담처럼 표현하긴 했지만, 소년들은 가만히 앉아 제대로 책을 읽는 방법조차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학생 중엔 책 한 권을 제대로 끝내보지 못한 아이들이 부지기수였고, 17년 생애 동안 책을 읽어준 어른이 단 한 명도 없는 학생도 있었다. 서 작가는 조급함을 느끼는 대신 그저 좋은 책과 간식을 준비하고, 소년들이 스스로 책에 푹 빠져 페이지를 넘기는 '몰입'의 순간을 기다린다. 소년들에게 책읽기의 기쁨을 알려주기 위해선, 일단 어떠한 평가도, 편견도 없이 기다려주는 것만이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 그 막연한 상상을 넘어
책 <소년을 읽다>는 지난 2020년 2월 코로나19가 심해지고 소년원에서 외부 강사의 수업이 불가능해지기 전까지, 서 작가가 소년들과 보낸 사계절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이 '특별한' 국어 수업은 소년들을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엔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올 법한 에피소드나 감동적인 변화 스토리가 담겨 있지 않다.
저자는 소년들이 이곳에 들어오게 된 배경이나, 그들의 개인적 사연을 구구절절 풀어놓지 설명하지 않는다. 소년들의 과거와 현재를 극적으로 비교하지 않는다. 저자가 집중하는 건 오로지 지금, 이 국어 수업에 온 소년들의 '현재'다.
처음 접한 소설에 푹 빠져 아껴 읽겠다며 얼른 책장을 덮고, 손글씨로 진심이 담은 소감문을 꾹꾹 눌러쓰고, 수업에 초대한 소설가를 '형'이라고 부르며 친밀감을 표현하는 소년들의 모습이다. 대단한 변화는 없을지언정, 책을 마주할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이들의 표정을 섬세하게 포착해냈다.
그래서 이 책엔 비어 있는 부분이 꽤 많다. 때론 국어 수업을 듣던 아이가 다른 소년원으로 옮겨가기도 하고, 소년원 내에서 문제를 일으켜 '징벌방'이나 '집중방'에 다녀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 내막을 자세히 설명하진 않는다. 그건 어쩌면 편견 없이 이 소년들을 마주하기 위해 꼭 필요했던 공백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서문에서 "한계와 빈틈을 비집고 나오는 물음표에 의미를 두고 싶다"고 말했다. 한 사람에 대한 완벽한 이해나 판단을 가능케 하는 건 애초에 이 책의 목적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보다 저자는, 편견으로 가려져 있던 소년들의 평범한 얼굴과 해사한 표정 같은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 추상적인 생각 속에서 소년원에 있는 아이는 '얼굴을 모르는 범죄자'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고, 고통을 준 후안무치의 범죄자. 나는 추상적 존재가 아닌 현실에 존재하는 소년을 만났다. 소년은 타인에게 고통을 가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면서 동시에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삶의 맥락을 지닌 존재였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말이다." -13쪽
"다음에는 '이런 곳이 아닌 곳'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