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노모의 장군김밥그 맛은 변함 없건만 크기는 날로 커진다. 당신의 사랑을 담아서일까.
이상구
만화가 원작인 영화 <식객>에는 '세상의 모든 맛있는 음식은, 세상의 모든 어머니의 숫자와 같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그 말은 과연 옳다. 세상 모든 엄마들은 저마다의 손맛을 갖고 있다. 그건 마술이다. 영원한 미스터리다. 모든 자식들은 그런 엄마의 음식을 배우고 싶어 한다. 어쩌다 용케 흉내는 내겠지만 그 끝엔 항상 '이 맛이 아냐' 하며 좌절하게 마련이다. 엄마의 손맛은 감히 범접할 수 없다.
그래서 아쉽다. 가르쳐 줄 수도 없고, 꺼내서 물려줄 수도 없다. 몸 안의 피에 섞이지 않고는 아무리 사랑하는 자식에게라도 그럴 도리가 없다. 그러니 그건 그냥 당신의 운명과 함께할 수밖에 없다. 당신이 떠나면 그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남은 이들은 그걸 평생 그리워하고 추억하며 살 것이다. 현실에선 다시 만날 길 없으니 남은 기억만 곱씹어야 한다. 그래서 더없이 슬프고 안타깝고 억울하기까지 하다.
그 손맛은 변함없건만, 어머니의 김밥은 날이 갈수록 커진다. 잘 싸매지지도 않을 만큼 두툼하게 밥을 깔고 속을 욱여넣는다. 그걸 단단하게 말 힘도 없으면서, 그래서 곧잘 옆구리가 터지는데도 점점 더 커진다. 어쩜 그건 당신의 사랑일지 모른다. 한 줄을 네 덩이로 큼지막이 썰어 놓는 것조차, 망가진 손목 때문에 칼질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세월이 갈수록 더 커가는 당신 사랑을 표현하는 건지도 모른다.
큼지막한 장군 김밥 한 접시를 내오시며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내가 이걸 하면 몇 번이나 더 하겠느냐. 내 몸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할 테다. 내 손으로 해서 내가 먹을 테니 너도 많이 먹거라."
앞으로 몇 번이나 더 하겠냐는 말씀이 턱 걸린다. 그 말씀은 틀림이 없다. 우린 언젠가 헤어져야 한다. 그건 아주 가까운 날일 수도 있고, 약간의 여유가 남아 있을 수도 있다. 아무도 모르지만 그건 그렇게 예정 돼 있다. 그저 입방정일지 모르겠으나 어머니의 수술 이후 줄곧 그런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생각이 불온하니 심정은 불길하고 마음은 불안하다. 공연히 조급해지고 두려워진다. 그 김에 쓸데없이 한 마디 한다.
"이젠 그만 좀 하세요."
같이 있을 날이 멀지 않았다면서, 그래서 함께 있어도 당신이 그리워지는 것 같다면서 어쩌면 그럴 수 있는지, 나는 그러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 공연히 퉁명을 떨고, 아니할 말을 하고, 때로 화까지 내는 내 자신이 미워 죽겠다.
그래도 한 가닥 양심은 남은 걸까. 그리 못 돼 먹은 말을 내뱉곤 바로 후회한다. 반지르하니 참기름을 바른 김밥 위로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진다. 꽉 멘 목으로 그걸 삼킨다. 눈물 간이 밴 김밥의 맛이 참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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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 노모의 장군 김밥, 뭘 넣었다고 이런 맛이 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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