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책 표지
열린책들
시위진압대를 피해 화장실에서 견딘 13일
쿠아론뿐 아니다. 틀랄텔롤코 학살을 배경으로 한 작품 가운데 빠지지 않는 게 로베르토 볼라뇨의 소설 <부적>이다. 가브리엘 마르케스 이후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추앙받는 볼라뇨는 조국 칠레뿐 아니라 이주해 살았던 멕시코의 상처를 보듬는 작품으로 이 소설을 썼다.
이야기는 아욱실리오 라쿠투레라는 우루과이 여성의 목소리로 전해진다. 1960년대 멕시코시티로 온 라쿠투레는 그 시절 많은 라틴아메리카인이 그랬듯 좀 더 사정이 나은 멕시코시티로 건너와 불법체류 하는 것처럼 보인다. 따지고 보면 <로마>의 클레오도 비슷한 상황이 아니었던가.
라쿠투레는 스페인 출신 시인으로 멕시코에 체류 중이던 레온 펠리페와 페드로 가르피아스의 집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멕시코 대학교 인문대학 주변에서 아무 일이나 닥치는 대로 하며 살았다. 그렇게 1968년, 틀라텔롤코 대학살을 만난다.
"나는 그렇게 1968년에 이르렀다. 아니 1968년이 내게로 왔다. 이제 나는 그것을 예견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 나는 맹렬한 예감이 있었지만, 그 예감이 나를 엄습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나는 1월 벽두부터 그것을 예견하고 직관했으며, 그것을 짐작하고 감지했다. (중략)
나는 군대가 자치권을 짓밟고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체포하거나 살상하기 위해 캠퍼스에 난입한 9월 18일에 인문대학에 있었다. 아니다. 대학에는 사망자가 많지 않았다. 틀라텔롤코였다.
영원히 우리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는 그 이름! 그러나 군대와 경찰 기동대가 난입해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구타할 때 나는 인문대학에 있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인문대학의 어느 층 화장실이었다." -본문 중에서
틀라텔롤코 학살 기간 인문대학 어느 화장실에 숨어 있던 우루과이 여성 라쿠투레는 볼라뇨 소설 상당수가 그렇듯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한다. '알시라'라고 알려진 우루과이 여성은 경찰 기동대가 학살을 앞두고 대학을 점령했을 때부터 학살기간 내내 보름 가까운 시간을 화장실에 갇혀 견뎠다고 한다.
시가 세계를 구원하리라는 믿음
볼라뇨는 알시라의 이야기를 라쿠투레에게 투영하며 약간의 상상을 더한다. 변기에 앉아 스페인 시인의 시를 읽던 라쿠투레가 모든 대학 구성원이 얻어맞고, 피를 흘리며 학교 밖으로 질질 끌려나간 바로 그 시간부터 비극이 이어지는 내내 숨죽이고 화장실에 숨어 버텨낸다.
여러모로 처절하고 가난하며 보잘것없는 라쿠투레지만, 스스로를 '라틴 아메리카 시의 어머니'라고 부르며 궁핍한 상황에도 굴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시인이라 말하고, 수많은 시인에 경탄과 경외를 아끼지 않는 볼라뇨가 알시라에게 시인의 정체성을 투영한 의도는 분명하다. 수많은 결점에도 시와 문학이 세계를 구원하리라는 믿음이 깔린 것이다.
멕시코의 틀랄텔롤코 학살은 우리에겐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이고, 중국의 1989년 천안문 학살이며, 지금도 진행 중인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집회 탄압이다. 이를 자신의 작품 안에 녹여내고 '심연으로 걸어 들어가는 한 떼의 젊은이들과 그들의 노랫소리'로 이야기를 끝맺은 이 작가의 시도는 부정한 자들의 훼방을 떼어내는 문학적 부적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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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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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의 '1980년 광주', 틀랄텔롤코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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