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22일에 발행된 <관보>.
전자관보
프랑스 헌법 제10조는 "대통령은 최종적으로 승인되어 정부에 이송된 법안을 이송일로부터 15일 이내에 공포(promulgue)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독일 헌법 제82조는 "이 기본법의 조항에 따라 성립된 법률은 부서 후 연방대통령이 서명(ausgefertigung)하고 연방법률공보에 공고(verkündung)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탈리아 헌법은 "법률은 의회의 승인 후 1개월 내에 대통령이 공포한다. 법률은 공포 후 즉시 공고하고, 공고 15일 후에 효력을 발생한다"고 규정한다. 벨기에 헌법 제109조는 "국왕은 법률을 서명․공포한다(The King sanctions and promulgates laws)"라고 규정함으로써 'promulgate'라는 용어를 명기하고 있다. 중국의 입법법(立法法) 제52조는 "법률의 서명 공포 후 적시에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공보 및 전국적으로 배포되는 신문에 게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률 '공포(promulgation)'와 '관보발행(publication)'의 차이
우리와 비슷한 듯하지만, 결국 다르다. 모두 법률의 '공포'와 '게재(발행)'가 상이한 개념이며, 법률의 '공포' 행위가 발생한 연후에 비로소 공보에 '게재(발행)', 즉 '공표'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세계에서 맨처음 법률상 '공포'의 개념 및 규정을 발전시켜왔던 프랑스의 법률사전에는 "공표(publication)란 공표절차가 실행되는 행위이다. 법률 또는 법적 고지의 발행이 게재되는 공보 또는 신문은 출판물(publication)이라고 칭해진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또한 '공포'의 법률상 개념에 대해서는 "프랑스 공화국 대통령은 법률이 정부에 이송된 후 15일 이내에 공포한다. 공포는 법률의 합법적인 탄생을 확인하는 행위이다(Arnauld Salvini, 2003:29)."라고 명백하게 규정하고 있다.
본래 '공포(promulgation)'의 법률적 의미는 '관보발행'이 아니라 바로 대통령, 혹은 국가 수반(首班)의 법률 서명 절차를 가리키며 법률을 성립(확정)시키는 행위이다. 따라서 '공포'란 관보발행을 의미하는 'publication'(출판)과는 분명하게 상이한 개념이다. 이 점에 대하여 권위 있는 <Catholic Encyclopedia>은 "법률의 공포는 법률의 출판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법률 공포의 목적은 입법자의 의지를 알리는 것인 반면, 법률의 출판은 법률을 준수할 의무가 있는 당사자들에게 제정된 법률에 관한 지식을 전파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법률이 정상적으로 만들어졌음을 확인하는 행위와 법령을 일반대중에게 알리는 표시행위는 구별되어야 한다. 확인행위를 독일법에서는 'Ausfertigung'이라 하고 프랑스법에서는 'promulgation'이라 하는 반면, 표시행위는 독일법에서는 'Verkündigung'이라 하고 프랑스법에서는 'publication'이라 한다. 확인행위는 법령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법적 행위로서 특정 법령이 정상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인증하는 행위이고, 표시행위는 시민에게 법령의 존재를 알리는 행위다.
근대 시기에 이르기까지 왕이나 황제 등 국가 수반(首班)의 법률 반포, 즉 공포 행위만으로써 법률은 이미 충분히 그 법적 효력을 발생시킬 수 있었으나, 근대 이후 인쇄와 출판이라는 수단이 마련된 뒤부터는 법률의 효력 발생 시점을 법률을 출판, 발행하여 국민들이 법률 공포 사실을 인지한 때로부터 적용시키게 되었다.
프랑스에서도 근대 시기에 이르기까지 법률공포 행위만으로써 법률은 이미 충분히 효력을 발생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황제 나폴레옹의 서명과 동시에 법률의 효력이 발생했던 것이다. 하지만 근대 이후에 법률의 공포 사실을 수범자(受範者)인 국민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는 근대 민주법치주의의 기본 정신을 살리기 위하여 법률의 효력 발생 요건을 국민들이 법률 공포 사실을 인지한 시점부터 적용함으로써 '출판일자'라는 개념이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서 실종돼버린 법률 '서명일자'
법률에는 중요한 '일자'가 두 개 있다. 하나는 법률이 언제 만들어졌는가, 즉 언제 탄생되었는가의 '법률 출생일자'이다. 독일, 프랑스를 비롯하여 미국, 스페인, 러시아 등 서방 모든 국가의 법률은 "0000년 00월 00일의 '×××× 법률'"이라고 칭해진다. 여기에 기록되는 일자는 이른바 '법률일자'로서 법률공포권자가 법률에 서명한 서명일자와 동일하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법률의 생일을 가리키며, 이 일자가 바로 '공포일자'이다.
또 하나의 일자는 법률을 관보에 게재한 '발행(출판)일자'이다. 원래 출판인쇄가 없었을 때는 이 일자가 존재하지 않았으나 대중들에게 법률이 만들어진 사실을 '출판'을 통하여 알리는 절차가 중요해지면서 발행(출판) 일자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특정 법률을 지칭할 경우 일반적으로 앞뒤의 일자와 번호는 언급하지 않은 채 '××× 법률'이라고만 부른다. 따라서 우리의 법률에는 법률이 언제 만들어졌는지의 출생 일자를 알 방도가 없다. 마치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 출생 신고를 동사무소에 하는데, 신고일자만 남고 정작 출생일자는 없어져 버린 것과 마찬가지 결과가 된 셈이다.
'법률 공포'라는 확인행위는 확인권자가 대상 법령에 서명을 하고 그 날짜를 기재하는 행위로 구성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이 "법률 서명일자"가 실종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대통령이 국회에서 이송되어온 법률안을 서명하면서 관보 발행일자와의 혼선을 방지하기 위한다는 이유로 인하여 정작 그 서명일자를 쓰지 않고 있으며, 그 대신 이후 관보를 발행할 때의 그 발행일자를 대통령 서명 아래에 쓰는 것을 관행으로 하고 있다.
사실 일반인들이 차용증을 서로 주고받을 때나, 부동산 계약서를 작성할 때도 반드시 그 일자를 쓰고 난 뒤 비로소 서명이나 날인을 한다. 만약 여기에서 그 일자가 없다면 그 계약 자체가 무효가 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일자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이 법률에 서명하는 절차에서 일반적인 문서 작성에 있어서 적용되는 기본요건조차 갖추지 않고 있다. 일종의 '가(假)서명' 상태로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문서 성립의 완결성 자체에도 커다란 하자인 것이며, 특히 이것이 국가 최고수반인 대통령이 국가제도의 근간인 법률의 확정을 서명하는 절차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