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에 대한 찬양100년전, 일찍이 러셀 선생은 말씀하셨지. 하루 4시간만 일하라고~
황승희
그러려고 태어난 사람은 적어도 이 지구별에는 없는 게 좋지 아니한가. 문명은 눈부시게 발전했고 우리는 더 지나치게 부지런히 노동한다. 하루 4시간 노동이 적당하다는 100년 전의 러셀 선생을 끌어들일 것도 없다. 쉬고 싶다는 생각, 다른 삶이 절실했다.
우리는 한쪽 사람들에겐 과로를, 다른 편 사람들에겐 굶주림을 주는 방식을 선택해 왔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기계가 없던 예전과 마찬가지로 계속 정력적으로 일하고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어리석었다. 그러나 이러한 어리석음을 영원히 이어나갈 이유는 전혀 없다.
- 버트런드 러셀 '게으름에 대한 찬양' 33쪽
왜 사는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독서를 하면서 바뀐 것이 있다면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하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이런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삿된 것을 몰아내고 본질로 접근하여 결국엔 자유를 선사한다. 물론 대화 상대로 하여금 답답함을 유발하는 단점도 있다.
그럼 이제 당장 수입은? 덜 소비하고 검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시간적 자유와 신체적 자유를 선택하겠다. 사람들은 아직도 더 벌어야 한다며 계속 자유를 자꾸만 유예한다.
나는 그 사람들 통장에 있는 숫자에 놀라고 그 사람들은 나의 철없음에 놀란다. 대체 통장에 얼마가 있어야 하기 싫은 일을 안 할 수 있단 말인가. 게으를 권리가 훼손되는 정도까지 돈을 번다면, 그것은 망가진 삶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이 떠나니 몸이 아파 오는 걸까. 둘의 순서도 사실 헷갈린다. 뭐 딱히 순서에 의미가 있을까 싶다. 기대하지는 않지만 일을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조금 줄이고 싶다는 것이 그렇게 대역죄일 리는 없지 않을까?
우리 회사의 근무 형태는 출근이냐 퇴사이냐 두 가지 선택 밖에 없다. 말 그대로 죽느냐 사느냐, 햄릿 정신이 곧 기업 정신이라고나 할까. 시간제 계약직이라든가 탄력근무, 선택근무, 재택근무 같은 선택지가 없다. 다양한 개인의 상황과 환경을 어느 정도 수용해서 근무 형태를 조금 유연하게 해주면 훨씬 효율적일 텐데. 계속 다니고 싶어 질텐데. 회사가 장난이냐고? 유연한 근무형태는 이미 대세이며 직원과 회사가 오래 같이 가고자 하는 상생인 것이다.
좌우지간, 조금 쉬고 싶으면 사표를 내면 될 일이고 일을 조금 줄이고 싶으면 퇴사를 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 까짓 거 일을 조금 줄여서 모해? 아예 관두고 푹 쉬자. 내가 당최 언제 쉬어 봤어? '다음 밥벌이는 마련해놓고 관둬야 되는 거 아냐?'라는 친구들 말은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처럼 하나마나한 말 아닐까.
일단 지금 살고 봐야 하니까. 놀면서 후일을 기약하는 것이 맞다. 직장 안에서는 새로운 생각이 있을 수 없다. 그럼, 퇴사하고 뭐할 거냐고? 나, 끝내주는 자유와 함께 멋진 백수가 되겠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새로운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나서는 특권을 누리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