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김치냉장고2001년 구입해서 19년 사용하고 고장난 김치냉장고입니다.
장순심
지난 6월, 김치냉장고가 고장 났다. 스파크가 튀더니 불꽃이 솟았다. 당황해서 물을 찾았고 그러다 코드가 보여 코드를 뽑았다. 다행히 불씨가 커지려는 단계에서 진화가 됐다. 워낙 오래 사용하기도 했고, 내부의 코팅도 군데군데 벗겨진 상태여서 회생 불가로 마음대로 진단을 내렸다. 일반적으로 평균 사용 기간보다 더 사용했다는 생각에 얼마가 들지 모르는 수리보다는 이젠 바꿔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관련기사 :
19년 쓴 김치냉장고가 고장나고 생긴 일]
길게 일주일, 한 달 정도면 새 김치냉장고가 그 자리에 다시 있을 거라고 당시엔 당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고장 난 김치냉장고는 아직 그 자리를 우뚝 지키고 있다. 새로 사면 이전에 사용한 것을 수거해 갈 테니 폐기물 처리 비용을 아끼자고 두었던 것이다. 하루 이틀 새로 사는 것을 미루다 여섯 달이 지났다.
당시엔 여름철이라 김치냉장고 없이 살아가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크지 않은 냉장고만으로 음식을 상하게 하지 않고 그야말로 여름을 잘 버텨냈다. 다만, 겨울철 김장 때는 그래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때 가서 사도 늦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버텨온 것이다.
그런데, 마침 포털에 기사가 올라왔다. 15년 이상된 김치냉장고를 리콜해서 수리해준다고 했다. 딱히 간절함으로 버틴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는 생각으로 버틴 것도 아니었다. 몇 번이나 폐기물로 처리하려다 차일피일 미뤄진 것이었는데 수리를 받아 더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보상 판매도 가능하다고 한다. 버티니 이런 행운도 있다.
이 고단한 현실을 버티려면
지금 하는 일도 그렇다. 지난 2월, 도서관에 열심히 다니며 책도 읽고 글도 쓰고 다시 무언가를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았다. 힘닿는 데까지 배워보자고 생각하며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바로 신청했다. 그에 따라 모임 그룹도 단톡방도 늘었다. 일주일의 하루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생각에 배우고 싶던 모임에는 일정을 꽉 채워 가입했고, 한꺼번에 소통할 수 있는 단톡 방에는 메시지가 홍수처럼 쏟아지던 중 코로나 상황을 맞았다.
처음엔 진행하는 측에서도 혼란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이른바 온라인 수업을 시작했다. 손도 무디고 느린 사람이 첨단 문명의 세상에 입문했고 16주의 수업을 마쳤다. 그 후로도 상담 과정, 보수 과정을 거쳐 지금은 주민센터에서 평생교육 상담을 주 3일 오전 시간에 진행하고 있다.
학습을 하며 두려움과 한계에 부딪칠 때마다 생각한 것이 버티기였다. 버티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모르면 묻고 또 묻고, 실수도 많았다. 때론 혼자서만 뒤처지는 것 같기도 했지만, 최선을 다해 버텨내는 것으로 승부 아닌 승부를 보았다. 누구를 누르고 어딘가에 오른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일도 한다. 나의 일자리가 있다.
버틴다고 하니 어쩐지 삶이 고단한 느낌이다. 이런 느낌에서 벗어나는 방법도 있다. 우연히 접하게 된 환경에 관한 책을 읽고 강의를 들으며, 또 관련한 방송이나 다큐를 통해 덜고 비우고 나누고 오래 사용하는 미덕을 새삼 알아가는 중이다. 환경지킴이의 마음으로 버팀의 의미를 상쇄해 본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더는 근근하지 않고 흡족하기까지 하다.
모든 생활의 중심에 돈이 있다. 돈의 필요나 가치, 효율을 생각하지 않고 산다면 거짓말이다. 재난지원금이 잠깐 마음을 넉넉하게 했고 불안한 마음을 덜어주기도 했다. 힘들면 국가가 돕겠지, 하는 마음도 위로가 되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티는 힘이 필요할지는 모르겠지만, 생각을 바꾸는 지혜가 필요할 때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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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전 불꽃 튄 김치냉장고, 버리는 일 미루다가 생긴 행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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