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당일인 3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고등학교에 마련된 수능 고사장에서 수험생들이 입실 전 자신의 시험실을 확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올해 수능은 유례없는 연기 사태 속에서 치러진다. 우리는 이미 3년 전 포항 지진을 통해 일시에 보는 시험의 취약성을 여실히 경험한 바 있다. 한날한시에 시험을 본다는 건 여러 취약점을 내포한다. 수능 시험이 끝나면 갖가지 사건 사고를 보도하지만, 50만 명이 보는 시험이 이 정도로 관리되는 건 대단한 일이다. 얼마 전 미국 대선이 있었는데, 현직 대통령이 이런저런 꼬투리를 제기하는 걸 보면서 한국의 선거 시스템이 얼마나 완벽에 가깝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전국적인 관리 시스템에 특화된 나라이긴 한데, 아마 입시에 대한 문제제기가 많은 나라이기 때문에 수능 같은 시스템도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수능시험이 끝나면 으레 교육과정평가원장의 인터뷰가 나온다. 난이도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특별한 것이 있을 수가 없다. 난이도는 무조건 예년의 평균에 맞추게 되어 있다. 가끔 물수능이니 불수능이니 하는 말들이 나오는데, 그건 출제자들이 그만큼 문제 난이도를 조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일 뿐, 어떤 출제진의 의도성을 보여주는 건 아니다.
올해 초부터 고3 재학생들을 위하여 문제를 쉽게 출제해야 되는 거 아니냔 이야기가 나왔는데, 상대평가 9등급제 시험에서 애초에 되지도 않을 이야기였다. 이미 수능은 상위권 수험생들의 변별을 위한 시험이라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수능 문제의 체감 난이도는 상위권 수험생을 가르는 한 두 문제의 킬러문항이 좌우하고, 이를 쉽게 내면 1등급이 사라질 수 있다는 걸 이미 지난 칼럼에서 설명한 바 있다.
수험생들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
명절에 '취직했냐?' '결혼은 언제 하냐?' 같은 소리 하지 않기 운동이 펼쳐진 지 오래건만, 수험생에게 시험 잘 봤냐는 질문 하지 말자는 운동은 아직 잘 안 보인다. 그냥 수고했다고만 하고 결과는 묻지 않는 것이 좋다. 입시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승자보다 패자가 많은 게임일 수밖에 없다. 구조적으로 이렇다면 시험 잘 보았냐는 물음은 염장 지르는 질문이 될 확률이 그렇지 않을 확률보다 높다. 취업이나 결혼보다 성공확률이 낮은 게임이라면 더욱 삼가야 할 질문이라는 걸 깨달을 것이다.
더 크게 보면 수능에 응시하지 않는 고3 학생도 많다. 애초에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지 않는 특성화 고등학교 재학생도 있고, 인문계 재학생이라 해도 대학 진학을 수능 트랙으로 가지 않는 학생, 입시 경쟁에서 일찌감치 낙오된 학생들도 적지 않다. 누구에게는 부담스런 관심이 또 누구에게는 그런 관심이라도 갖고 싶다는 박탈의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다.
올해 수능에서 특기할만한 것은 지원자 50만 명 선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올해 수능 응시생은 49만 3천명 선으로 역대 최저다. 당분간 오르고 내림이 있겠지만 학령 인구감소로 이 추세는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한동안 수시가 확대되어 수능의 중요성이 떨어져 왔지만, 기성세대의 학력고사에 대한 추억과 맞물려 온 사회가 1년에 한 번씩 치르는 통과의례처럼 인식된 측면이 있다.
올해는 수능 수험표 할인 같은 이벤트는 없어야 할 것으로 본다. 해방감을 만끽하고픈 수험생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코로나19 상황이 그리 녹록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능이 모든 나라가 함께 하는 의례였기에 이런 풍습도 있는 거겠지만, 명절에도 고향 내려가지 않기 운동을 펼쳤듯이 올해는 그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