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약을 끝까지 잘라 쓰는 사람들이 궁색할까? 아니다. 그들의 정체는 이웃집 백만장자다. 최소한의 소비를 하는 그들이 지구를 구할 것이다.
최다혜
'최소한의 소비'를 선언하는 시민들의 힘
절약가들이 잘 산다. 돈 덜 쓰면 돈 모이니까 당연하다. 단순한 덧셈과 뺄셈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단순한 산수를 '자린고비', '짠내', '궁색'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이야기의 힘이 세다.
냉장고 4대 중 술 냉장고를 따로 둔 사람은 여유로워 보여야 하고, 삼시 세끼를 자급하며 밥을 짓는 사람은 우스꽝스러워야 한다. 우리의 휴대전화와 재킷은 여전히 멀쩡하지만, 멀쩡한 물건을 두고 새로 사지 않는 태도를 '성숙'이 아닌 '궁색'으로 여기도록 한다. 기업의 노련한 마케팅 전략이다.
이 전략에 흠뻑 취할수록 우리는 점점 더 자산을 잃는다. 돈을 썼으니까! 그리고 우리가 자산을 잃은 딱 그만큼, 기후위기가 지속됐다.
우리가 돈을 쓸수록 기업은 물건을 생산했고, 산을 깎아 알루미늄을 채굴해서 캔커피를 만들었다. 석유를 파내 플라스틱을 만들고, 도로 위 자동차를 굴렸으며, 공장에 쓰일 전기를 생산했다.
탄소를 머금어 줘야 할 산과 흙은 힘을 잃었고, 바다는 산성화가 되어가며, 대기 탄소층은 두꺼워졌다. 지구는 뜨거워졌고, 시베리아 동토층은 녹아 수백만 년 전 얼어버린 바이러스를 배출할 예정이다. 동아시아는 물에 잠길 것이고, 2020년에서 2030년에는 기후 재난을 끊임없이 겪을 수밖에 없다.
2020~2050년은 인류가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큰 혼란을 겪을 시기가 될 것이다. 몇 년 차이는 있겠지만 이 시기는 3단계로 나뉜다. 그것은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말(2020~2030년), 생존 단계(2030~2040년), 그리고 재생의 시작(2040~2050년)이다.
- <작은 행성을 위한 몇 가지 혁명> 중, 시릴 디옹 지음
석유를 쓰지 않아도 경제가 망하지 않을 방법을 찾을 때다. 물건을 생산하지 않아도, 매일 수천 대의 트럭이 서울을 들락거리지 않아도, 경제가 온전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경제(정확히는 우리의 행복)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소비를 '행복'이라 믿는 한, 비행기를 타고 가는 해외여행, 거품 목욕과 두툼한 스테이크가 우리의 진정한 욕망이자 안정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 하나 막자고 유럽 여행을 가지 말자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고, 황당해할 것이다.
황당하겠지만, 지금은 가까운 지역에서 여가를 누리는 게 낫다. 뉴욕과 런던을 비행기로 왕복하면 북극 얼음 3㎡가 녹는다(책 <작은 행성을 위한 몇 가지 혁명> 중, 시릴 디옹 지음, 32쪽).
나는 도토리묵에 마늘간장 양념해서 식사를 즐기는 게 삼겹살에 상추 쌈 싸 먹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가축에게 먹일 사료를 재배하기 위해 아마존 열대우림이 깎인다. 축산업에서 발생하는 온실 가스는 전체의 18%다. 자동차, 배, 비행기가 내뿜는 탄소보다 13.5% 더 많다(한살림 소식지 2020년 10월호, 조길예 기후행동비건네트워크 대표의 <채식, 기후위기 시대의 밥상> 글 참고).
지구 상황이 생각보다 안 좋다. 기업에게는 안됐지만, 우리는 부자가 되어야겠다. 돈 덜 쓰고, 돈 모아서, 땅도 사서 우리 식구들 먹일 호박도 텃밭에서 가꿔야겠다.
기업은 점점 늘어나는 절약가들에 대비하여, 대안을 찾아야 한다. 기업은 대안 경제를 위해 정부를 압박해서 살아남기를 바란다. 지금껏 모아둔 돈이 많으니, 잘 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