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기자로 한 시골 화가를 인터뷰하다
박명수(원주시 귀래면)
My Way
나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 (My Way)>를 즐겨 듣는다. 그의 노래는 인생에 대한 진솔한 고백으로, 마치 내 지난 삶을 얘기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트린다.
And now, the end is near
이제 내 생의 마지막이 가까워오네
And so I face the final curtain
그래서 나는 이생의 마지막 장을 눈앞에 두고 있네.
……
이제 내 인생 종착역을 앞두고, 지난 삶의 한 단면들을 2016년 8월 15일부터 2020년 12월 30일까지 오마이뉴스 연재 기사에 78회 동안 쏟아놓았다.
지난날을 회고, 성찰, 고백컨대, 나는 눈앞에 닥친 현실의 고난을 피구(避球) 하듯이 슬쩍슬쩍 넘기면서 엉거주춤 살아왔다. 이제 와서 궁색한 말로 내 지난 삶을 변명하거나 덧칠치 않으련다.
나는 소년시절에 세 가지 꿈을 꾸었다. 곧 교사·작가·기자가 되는 꿈이었다. 그 꿈 탓인지, 지난 33년을 교사로 청소년들과 더불어 살아왔다. 그리고 뒤늦게 작가의 길에 입문하여 30여 년 원고지를 메웠으며, 그리고 늘그막에 천만 뜻밖에도 시민기자가 돼 20년 가까이 국내외 근현대사 현장 곳곳을 누비면서 숱한 기사를 썼다.
그 어느 한 분야도 성공치 못했다. 하지만 아무튼 소년 시절의 세 가지 꿈은 모두 이룬 셈이다. 나는 이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음으로 양으로 나를 도와주셨다. 남은 삶은 덤으로 생각하면서 은혜를 베푸신 고마운 분들과 나라와 사회에 빚진 바를 갚는 자세로 살아가련다.
새삼 회고컨대 나는 나라와 사회의 은전을 많이 입었다. 육군장교로 군생활을 하게 했으며, 교육자로 풋풋한 청소년들과 더불어 지내게 했고, 작가로 숱한 책을 저술케 했다. 그리고 말년에는 시민기자로 국내외를 누비면서 영웅, 순국 열사, 애국애족 의사, 독립전사들을 만나게 하여 그분들의 행적을 그릴 수 있는 기회를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