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형식 장군> 출판 기념식장에 모인 내빈(왼쪽부터 정운현 전 국무총리비서실장, 이규상 눈빛출판사 대표, 필자, 장세윤 동북아역사재단 수석 연구위원)
박도
사학자 장세윤과 언론인 정운현을 만나다
어느 날 이대 중앙도서관 4층 서가에서 <한국독립운동사 연구> 제7집에서 '허형식 연구'라는 장세윤 박사의 논문을 발견하고 단숨에 읽었다. 그러자 허형식 장군의 발자취를 갑자기 더듬고 싶어졌다.
그러면서 같은 구미 출신인 허형식 장군과 박정희 대통령의 생애를 '네 발의 총성'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쓰고자 기획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그분의 아내(육영수, 김점숙)까지도 총살로 이승을 떠났다. 그래서 현지 답사 자문을 받고자 당시 성균관대학 연구교수로 재직 중인 장세윤 박사에게 연락했다.
내가 만나 뵙기를 청하자 장 박사는 기왕이면 허형식 장군을 국내 신문에 최초로 보도한 <대한매일신문> 정운현 기자도 합석하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그리하여 2000년 7월 중순, 우리 세 사람은 성균관대 동아시아연구소에서 만났다.
그날 내가 허형식 장군과 동향이라고 말하자, 두 분 모두 초면임에도 마치 십년지기처럼 맞아주었다. 정운현 기자는 <중앙일보> 재직 당시 특집 '실록 박정희' 현장취재로 구미에도 여러 번 답사했다면서 당시 상모동 박정희 대통령 생가보존회장 김재학 어른도 잘 알고 있었다.
그 어른은 할아버지 친구로 우리집 사랑방에도 자주 오셨다. 그때마다 나는 사랑에서 그 어른에게 매번 큰절을 드린 바 있었다. 그날 두 분에게 허형식 유적지를 답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장 박사는 답사에 도움이 될 거라면서 중국 헤이룽장성 공산당자료실장 김우종 선생의 연락처를 건네줄 뿐 아니라 다른 자료도 챙겨줬다.
나는 애초 현지 사정에 밝은 김중생 선생과 함께 허형식 장군 유적지를 더듬으려고 했으나 여의치 못했다. 그래서 나 혼자 북만주 현지를 답사키로 작정했다. 서명훈· 김우종 두 분 선생에게 편지와 전화로 현지 안내를 부탁했다. 그러자 두 분 모두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승낙했다.
2000년 8월 17일 제2차 항일유적답사 길에 올랐다. 그날 오후 하얼빈시 건국가 조선문화궁전에서 김우종·서명훈 선생을 만나 허형식 장군의 항일투쟁사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