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류 문화 축제 케이콘(KCON) 컨벤션에 참석한 관람객들이 K팝 가수가 등장하자 환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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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적응하고 나자, 한국이 유럽에도 많이 스며들어 있다는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케이팝을 틀어놓고 제네바 중심역인 코르나방에서 춤추는 젊은이들, 휴대전화로 한국드라마 보는 사람들도 보였고, 세월호 뱃지를 단 제네바 사람도 마주쳤다. 회색 생활한복을 입고 가는 젊은 백인 여성도 있었다. (그 생활한복이 방탄소년단 정국이 입었던 모델이라는 데 내 손모가지를 걸 수 있다!)
그렇다. 방탄소년단 팬들은 여기에도 있었고, 그들 사이에서 나는 한국인이라는 자체로 환영받았다. 케이팝 팬들이 모여서 야외에서 자유롭게 춤추는 파티가 있었는데, 내가 멀찍이서 구경하고 있자, 갑자기 우르르 모여들어서 '꺄아!! 한국인이에요?!' '반가워요!' 하며 환영을 해주는 것이다. 뭐지? 갑자기 아싸에서 인싸가 된 이 기분?
그들 사이에서는 한국인이란 이유, 한국어를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선망의 대상이었다. 어쩐 일인지 그들은 한국인인 나보다 한국을 더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다. 케이팝의 모든 노래의 안무를 외우는 친구도 있었고 유튜브로 한국어를 독학해서 꽤 잘하는 친구도 있었다. 방탄소년단 지민의 솔로곡 <세렌디피티>의 가사를 타투로 새긴 친구도 있었다.
이 때 처음으로 외국어에 대한 일방적인 애증이 해소되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 우리는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 내가 스위스 문화가 궁금하고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은 만큼, 저 사람들은 한국 문화가 궁금하고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한다. 언어 교환, 쌍방향 소통이 가능해진 것이다.
최근 방탄소년단의 성공적인 월드투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아카데미 수상 등이 이어지고, 결정적으로 코로나 방역에서 유럽 어느 나라보다 한국이 선방하면서 한국의 위상이 갑자기 높아진 것을 느낀다.
아이 학교의 한 고학년 학생은 한국 방역의 특징에 대해서 조사하겠다고 세계보건기구에서 일하는 한국인과 연결해달라고 연락을 해왔다. 기본적으로 한국의 팬인 한국어학생들은 한국이 잘해냈다는 데 자랑스러워하고 한국에 대한 좋은 뉴스를 퍼 나른다.
나로서는 한국의 빛과 그림자를 잘 알고 있고 헬조선이란 말에도 공감하기 때문에, 마냥 한국을 좋아라 하는 친한파 외국인들을 보며 복잡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당장 내가 여기서 이방인인 한국인으로 살기에는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는 게 편하긴 하다. 코로나 유행 초반에는 동양인 전체에 대한 혐오로 길거리 다닐 때 인종차별테러 당할까 조심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한국어의 위치가 변하고 있는 모습을 시시각각 관찰할 수 있는 시기에 제네바에 머무르게 되어 운이 좋았다. 마침 제네바시민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기회가 생겨 더 많은 쌍방향 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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