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냄비밥, 이렇게 소생시켰습니다

[새둥지 자취생 일기] 처음으로 누룽지 냄비밥을 짓다

등록 2020.10.14 10:19수정 2020.11.17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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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미밥 짓기
현미밥 짓기정누리
 
문득 부엌에 있는 전기밥솥이 무식하게 크다는 생각을 했다. 주방을 점령한 일짱같다. 저것만 없어도 공간이 조금은 널널해질텐데. 그 전에는 햇반과 전기밥만 먹었던 나는, 냄비밥을 시도해보기로 맘 먹었다. 옆에서 뭐라 할 사람도 없으니 과감히 시도해보는 거다. 자취 2주차, 처음으로 냄비밥에 도전했다.
 
 현미밥 짓기
현미밥 짓기정누리
 
네이버 블로그에서 현미 냄비밥 레시피를 읽었다. 보아하니 시간 조절이 관건이다. 한번 끓이고, 중불에 15분, 뒤적인 다음 약불에 10분. 그 후 뜸을 들이며 5분. 우선 시간을 잘못 계산해서 12시간 불릴 것을 24시간 불린 팅팅한 현미를 꺼냈다. 어디서 본 건 있어서 손을 넣어 물을 계량하고, 하이라이트 위에 올렸다. 펄펄 끓긴 하는데 이게 맞는지 모르겠다. 


중불에 뒤적일 때까지는 괜찮았다. 현미가 그 많은 물을 다 먹었는지 팝콘처럼 부풀어올랐다. '약불 10분 후 뜸을 5분 들이면 완성이지.' 타이머도 맞춰 놓고 제 시간에 냄비를 열었다. 누룽지 냄새 혹은 탄내가 살짝 나야 하는데, 아직도 온전한 쌀 냄새가 난다. 고개를 갸웃하며 한입 먹었다. 아, 설익었다!
 
 현미밥 짓기
현미밥 짓기정누리
 
하이라이트는 가스렌지보다 화력이 약한 것 같았다. 기본적인 레시피에 5~10분 정도는 더 추가해야 할 듯하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소주 두 숟가락을 골고루 뿌리고 다시 뜸을 들이면 밥이 익는단다. 출처가 스펀지 방송이니 믿어볼 만하다. 
 
 소주
소주정누리
 
오 밤 중에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혼자 소주를 사는 건 처음이라 괜히 떨렸다. 마치 미성년자처럼 긴장했지만, 민증 검사도 없고 아무 일도 없었다. 유감이다. 집으로 돌아와 소주 두 큰술을 넣고 뜸을 오래 들였다. 30분쯤 지난 뒤에 냄비를 열어보니 밥 다운 밥이 있다! 수술에 성공한 의사처럼 이마에 땀이 흘렀다.
 
 현미밥
현미밥정누리
 
엄마는 그냥 전기밥솥 쓰라고 했지만, 나는 냄비밥이 좋았다. 화분을 사온 첫 날처럼 괜히 내가 지은 밥을 이리저리 찔러보고 쳐다본다. 밥을 짓다니. 이 작은 주방이 정말 내 손에 들어온 듯한 날이다. 정말 홀로 새둥지 만들기 시작이다.
#자취생 #혼자살기 #1인가구 #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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