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그로 인한 결과는 반미 감정의 지속적 확산이다. 피해자로 동정 받을 수도 있었던 미국이 이라크전쟁 등을 거치면서 되레 악랄한 가해자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이다. 9.11로 인해 미국은 더욱 더 많은 것을 잃은 것이다.
부시 행정부가 관심을 보인 세계와의 의사소통도 일방적인 단방향에 불과했다. 미국이 하고 싶은 말을 들려주는 수준에 불과했다. 이는 미국의 이미지가 9.11 이전보다 더 악화되는 원인이 됐다. 위의 송태은 논문은 이렇게 말한다.
"퓨리서치센터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2002년 이후 국가로서의 미국뿐 아니라 미국인에 대한 이미지도 지속적으로 나빠졌다. 미국인에 대한 호감도는 이슬람권에서 특히 악화되는데, 인도네시아에서는 2002년 65%에서 2007년 42%로, 요르단에서는 2002년 54%에서 2007년 36%로, 터키에서는 2002년 32%에서 2007년 13%로 호감도가 급하락했다."
실추된 미국의 위상을 회복한다는 명분 아래 부시 행정부가 일방적 의사소통을 강화하고 이라크전쟁 등을 일으킨 것이 이런 결과를 낳은 것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는 전임 행정부의 노선에 대한 반성이 있었다. 오바마 때는 세계인의 의견을 듣는 쌍방향 의사소통이 시도됐다. 또 '모든 시민은 외교관이다'라는 모토로 표현될 만한 시민외교관(citizen diplomat) 개념이 대두되면서 미국 정부뿐 아니라 국민들도 국가 이미지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그 결과, 오바마 시대에는 미국의 이미지가 어느 정도 개선됐다. 송태은 논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미국에 대한 호감도 상승이 가장 두드러진 지역은 유럽권으로, 프랑스와 독일의 경우 오바마 대통령 취임 후 약 30% 이상 호감도가 상승했고, 영국은 15%, 스페인은 25% 상승했다. 반면, 동유럽이나 중동 지역의 호감도는 터키를 포함해 거의 증가하지 않았거나 20% 안팎에 머무는 수준이며, 2010년에 이르면 중동 지역의 호감도는 다시 부시 행정부 시기 수준으로 하락한다. 한편, 한국·일본·인도를 포함한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의 경우 미국 호감도가 부시 행정부 시기 60% 이상을 상회하고 있었는데, 오바마 행정부 들어 약 10% 정도 증대했다."
오바마가 회복한 이미지, 무너지다
그런데 오바마가 가까스로 회복해놓은 이미지가 2017년 1월 20일 이후로 와르르 무너지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미국의 국력이 부시 때보다 약해졌는데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그때 못지않게 험악한 인상을 지으며 힘 과시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미국은 WHO(세계보건기구) 분담금 납부를 거부하고 있다. 세계적인 코로나 사태 와중에 세계 최강 국가가 WHO 분담금을 거부하고 있으니, 미국의 리더십 추락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트럼프 시대의 미국 리더십이 얼마나 추락했는지는, 별다른 명분도 없이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일으키고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기업들을 방해하는 데서도 나타난다. 또한 코로나19 사태에서 전 지구를 통합하는 리더십을 발휘하기는커녕 오히려 중국을 저주하고 냉전구도를 정착시키려 하는 데서도 드러난다. 9.11이 일어난 지 19년밖에 안 되는데도 9.11의 원인을 새까맣게 잊어버린 듯 행동하는 모양새다.
탈냉전 이후에 출범한 빌 클린턴 행정부는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구호에서도 나타나듯이 군사적 영향력보다는 경제적 영향력의 확대에 좀 더 신경을 썼다. 이 같은 온건한 패권 추구에 대한 반동(反動)으로 나온 것이 조지 부시 대통령 및 딕 체니 부통령 등이 이끄는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대두다. 힘의 과시 없는 패권 추구에 대한 미국 주류 세력의 거부감을 반영하는 현상이다.
동일한 동(動)과 반동이 그 후에도 있었다. 오바마 행정부가 온건 모드를 취하자 그에 대한 반발로 도널드 트럼프가 등장했다. 부시 때는 네오콘이라는 이념적 기반이라도 있었지만, 트럼프 행정부 아래서는 그럴 만한 것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비슷한 동과 반동의 반복이 약 20년 사이에 두 번이나 나타났다는 것은 힘을 통한 패권 과시에 미국인들이 얼마나 익숙해 있는지를 보여준다.
9.11에서 분노와 혐오를 퍼트린 트럼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