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능행도(華城陵行圖) 화성능행도는 정조가 1795년 화성에 있는 사도세자의 묘인 현륭원(지금의 융릉)을 친행하는 동안 행해졌던 장면을 8폭 병풍에 그린 그림이다. 이는 여뎗번째 그림인 노량주교도섭도로 한강의 배다리를 건너오는 정조대왕의 행차를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격쟁은 이런 능행을 기회로 이루어졌다.
궁중유물전시관 소장
정조는 정약용이 대과에 급제하던 재위 13년(1789) 양주 배봉산에 있던 사도세자(장헌세자) 묘를 화성의 화산으로 옮겼다. 왕릉에 버금가는 위격을 갖추어 놓고 자주 화성으로 행차했는데, 그때마다 배다리가 필요했다. 정조는 이를 전담하는 주교사(舟橋司)를 만들었다.
주교사의 도제조 3명이 영의정ㆍ좌의정ㆍ우의정일 정도로 그 중요성은 컸는데, 정조는 막상 주교의 설계는 갓 급제한 정약용에게 시킨 것이었다. 정조는 정약용이 서학서를 통해 서양 과학지식을 습득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약용을 주교 설계의 적격자라고 여겼던 것이다.
실제로 배다리 축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약용은 훈련도감 대변선과 경강사선 중 선체가 큰 대형선 80여 척을 징발하고 그 위에 판자를 놓아 다리를 만들어야 했다. 상업선인 경강사선에는 그 대신 대동미를 운반하는 특권을 주었으므로 징발당한다고 불평하지는 않았다. (주석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