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존스홉킨스대가 집계한 미국 내 코로나19 사망자 지도. 이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해 집계된 전세계 총 사망자 57만3042명 중 1/4에 달하는 13만5605명이 미국 사망자다(7월14일 오후1시30분 기준)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거기다가 코로나19 자체를 소재로 중국과의 패권 경쟁도 연출하고 있다. 코로나19 책임 공방을 전개하며 중국의 도덕성과 위신을 떨어트리고자 애쓰고 있다. '차이나 바이러스'라는 병명이 확산될 수 있도록 하고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까지 나서서 안간힘을 쓰고 있다. 코로나19를 소재로 이른바 블레임 게임(blame game, 책임 공방전)에 열을 올리는 것이다.
이는 어떤 상황에 빠지더라도 중국만큼은 붙들고 있겠다는 미국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다. 이대로 쓰러지면 중국이 내 자리를 차지할 거라는 미국의 우려가 드러난다. 그래서 코로나19 와중에도 미국은 중국과의 패권경쟁을 종전과 동일한 양상으로 전개하고 있다. 미국이 국제적 지지를 받고자 이슈를 일으켜 도발하면, 중국이 스스로를 해명하며 대응에 나서는 양상이 종전과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올해 <성균 차이나브리프> 제8권 제2호에 실린 양철 성균중국연구소 교수의 기고문 '코로나19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대립'에 이런 대목이 있다. 코로나19를 둘러싼 블레임 게임을 설명하던 중에 나온 부분이다.
"미중 무역분쟁이 어느 순간 규범과 표준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으로 전환된 것처럼, 이번 사태도 언론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에서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여론전으로 전환되었다. 규범과 표준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 역시 국제사회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는 점, 미국의 조치에 중국이 반응하며 대응하는 형태가 반복되었다는 점에서 무역전쟁과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이 유사한 양상을 보였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몸속에 침투한 바이러스로 인해 인류 건강은 물론이고 세계질서까지 동요하는 이 상황에서도 중국을 철저히 '마크'하는 미국의 태도는 직전 세계 최강인 영국과 비교될 만하다. 1840년 제1차 아편전쟁 승리를 발판으로 동서양을 아우르는 최강대국이 된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년)을 계기로 경제 1위를 미국에 내준 뒤에도 정치 분야에서만큼의 종전의 최강국 지위를 그대로 이어갔다.
그런 영국이 직면한 절체절명 위기가 1929년 미국발(發) 대공황과 그 이후의 사태 전개다. 대공황에 대처하는 영국의 방식은 지금의 미국과 다소 달랐다. 경제 측면에서 고립으로 치닫는 지금의 미국과 약간 달리, 최강국 시절의 영국은 영연방(영국연방) 블록을 강화하는 쪽으로 돌파구를 모색했다.
서울대 교수들인 민석홍·나종일·윤세철이 1988년 함께 쓴 <세계문화사>는 노동당 출신의 제임스 램지 맥도널드(James Ramsay MacDonald, 1866~1937년) 총리가 1931년 거국내각을 조직한 뒤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다음해에는 캐나다의 오타와에서 연방의회를 열고 이미 웨스터민스터 조례로 공동체화한 제국이 경제적으로도 긴밀한 유대를 가지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자치령과 본국이 서로 전자의 농산물과 후자의 공산품에 대하여 특혜관세를 매기도록 하는 대신, 외국 상품에 대한 수입세를 늘리는 등 블록경제를 지향하게 되었다."
이처럼 영국은 영연방 블록화를 통해 대공황 탈출을 모색했다. 이는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낳았다. 1933년 후반부터 경기가 회복되고 재정이 안정적이 됐으며 실업자도 감소했다.
영국은 그러나 국제정치에 대해서는 그만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했다. 자국의 세계패권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도발적 움직임에 대해 유효한 견제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대표적인 게 일본 군국주의와 독일 나치즘에 대한 부실한 대응이다.
일본이 만주를 침공하고 국제연맹을 탈퇴하는데도, 독일이 국제연맹을 탈퇴하고 제1차 대전 강화조약인 베르사유조약를 파기하는데도, 영국을 비롯한 주류 진영은 적극적인 대응책을 내놓지 못했다. 영국 등이 속수무책이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자신감을 얻은 독일은 1935년에 에티오피아를 침공했고, 일본은 1937년에 중일전쟁을 도발했다. 이런 흐름은 1939년 제2차 대전 발발로 이어지고 세계질서 파괴로 연결됐다.
자크 알드베르 프랑스 교사를 비롯한 13명 유럽 고교 교사 및 대학 교수들이 쓴 <새 유럽의 역사>는 "민주주의, 특히 프랑스와 영국의 민주주의는 독재체제의 대두에 맞서는 데 무능한 것처럼 보였다"며 "그들 국가에서조차 파시스트운동이 발전했는데, 공산당들과 충돌했다"고 당시 영국 정부의 무능을 설명한다.
영국은 경제 측면에서는 블록화를 통해 위기를 어느 정도 극복했지만, 정치 측면에서는 전체주의를 막지 못해 제2차 대전에 직면하게 됐다. 이로 인해 옛 식민지인 미국에 세계 최강 지위를 넘겨줘야 했다.
물러서기 보다는 앞으로 나아가기
코로나19에 처한 미국은 그 같은 영국과 달리 국제관계에서 공세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의 정상 등극을 어떻게든 막겠다는 집념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세계패권을 위협할 만한 움직임을 적극 견제하고 있다. 직전 세계 최강국인 영국과 비교될 만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미국의 패권 싸움은 실상은 힘에 부치는 싸움이다. 이 점은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에서도 잘 드러난다.
대규모 전염병(감염병)과 싸우는 데는 의료 기술뿐 아니라 국가 시스템도 중요하다. 4.15 총선 때 방역 활동을 통해 한국 정부는 유능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보여줬다. 하지만 미국 국가 시스템은 코로나19 앞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국민들을 설득하고 지지를 받아내는 데서도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한국보다 훨씬 더 큰 정부를 갖고도 한국보다 훨씬 못한 성적을 내고 있는 것이다. 파리드 자카리아가 미국을 '바보국가'로 부를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미국은 이렇게 코로나19로 인해 지치고 힘들어하면서도 중국과의 패권경쟁에 박차를 가할 뿐 아니라 홍콩 문제 등으로까지 전선을 넓혀나가고 있다. 예전처럼 중국을 몰아붙일 수 없음이 명백한데도, 외형상으로는 싸움판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