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규 재판박정희 대통령 ‘시해’ 혐의로 재판정에 선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혹자는 김재규가 박정희를 쏜 후 ‘육본’이 아닌 ‘남산’ 중앙정보부로 갔으면 역사가 바뀌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2020년 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남산의 부장들>이 개봉했다. 김재규와 그의 부하들 이야기는 임상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그때 그 사람들>(한석규와 백윤식 주연)이라는 영화로 제작해서 개봉한 바 있다.
국가기록원
"자기의 운명을 짊어지는 용기를 가지는 자만이 진정한 영웅이다." ㅡ 헤르만 헤세.
지난 세월 우리는 군사독재에 저항한 민주화투쟁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막상 유신의 심장을 멈추게 한 주역에 대해서는 '건너 뛰었다'. '국가원수 살해'라는 도덕적 감성과 함께 유신세력과 족벌언론의 세뇌 탓이 컸다.
신문을 통해서 김재규 피고의 재판을 단편적으로만 전달받은 일반 국민은 김재규 씨가 느꼈던 고민 - 즉 대의(大義)를 위하여 소의(小義)를 버려야했던 고민 - 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변호인으로써 김재규피고를 직접 대하고 또 법정에서 김재규 씨의 진술에 직접 대하여 온 많은 인사들은 거의 모두가 한결같이 김재규 씨에게 감동하고 감명하고 감루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즉 그들은 마음에 깊이 느끼는 바 있어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필자는 이러한 소식을 여러분을 통해 들었다. 우연한 기회에 뜻하지 않던 분들로부터 들었다. 정치에 전연 관계를 가지지 않은 분들로부터도 들었고. 과거에 유신정권에 가깝다고 알려졌던 분들에게도 들었다. (주석 1)
이제 역사의 시각으로 10ㆍ26을 바라 볼 시간과 공간이 되었다. 이를 위해 몇 가지를 꼽아본다. 첫째, 헌법정신을 회복하기 위한 민주혁명. 둘째, 국민저항권사상의 발로. 셋째, 다수 국민의 희생을 예방하는 정당방위. 넷째, 민족사의 전통인 불의에 맞서는 의거. 다섯째, 살신성인 정신. 마지막으로 역사정의의 구현이다.
사육신으로부터 발원하여 의병, 안중근의거, 의열투쟁, 독립운동,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지는 민족사의 면면한 역사정의의 측면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를 시대적 가치로 공유해온 국민이라면 반민주 유신독재의 심장을 멈추게 한 김재규장군(과 그의 부하들)에게 큰 빚을 졌다고 인정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에게 진 빚을 갚은 때가 되었다. 그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하고, 유언대로 '장군'으로 불러주고, 민주화운동의 성지인 모란공원으로 유해를 이장하여 부하들과 함께 영원한 안식에 들게 하는 일이다. '10ㆍ26거사의 진실찾기'는 역사학자ㆍ언론인의 책무이지만, 일반 국민도 모르쇠로 지낼 수만은 없을 것이다.
결국 '제4심'의 주도는 하늘의 대행자인 의로운 사람들의 몫이다. 따라서 김재규장군의 '재심'과 '복권'은 민주시대를 사는 깨어 있는 사람들의 '빚 갚음'이며 '역사정의'를 실천하는 길이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고 하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