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중앙)와 김재규(오른쪽), 그리고 차지철(왼족)
박도
유신말기 박정희와 차지철의 시국인식은 그야말로 '소름 끼칠' 정도였다. 그들은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해 능히 못할 짓이 없었다. 박정희는 어떤 심리였을까. 박정희의 '정신분석'을 연구한 신용구 씨는 "대담하면서도 소심했고 공격적인 동시에 한없이 유약했던" 인물로 분석한다.
박정희가 메시아적 존재를 자아 이상으로 설정한 것은 죽음에 대한 그의 무의식적 공포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두 가지의 강렬한 불안 - 유기불안과 거세불안 - 으로 인해 늘 생존에 위협을 느끼고 있던 그로서는 죽음에 대한 공포 역시 그만큼 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나칠 정도의 경쟁적 태도나 강박증 역시 죽음과 관련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의 부산물이었음을 감안할 때, 결국 그의 핵심적인 갈등의 요체는 죽음에 대한 공포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문제들에 시달리던 그의 입장에서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메시아적 인물이 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불안 해소 방법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주석 10)
김재규는 비장한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온건한 방법도, 충간도 먹히지 않는 상황에서는 자신의 몸을 던지기로 결단한다. 박과 차의 거침없는 발언으로 보아 장차 나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우려되었다.
저는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을 비교해보았습니다. 이 대통령은 물러설 때 물러설 줄 알았는데, 박 대통령의 성격은 절대로 물러설 줄 모릅니다. 국민과 정부 사이에서 반드시 큰 공방전이 벌어지고, 수없이 많은 사람이 상할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리고 현재만 하더라도 약 400~500명이 교도소에 있고, 학교에서 쫓겨난 학생 수가 800~1000명 정도입니다. 결국 자유민주주의를 해야 할 나라가 독재를 하면서, 원천적으로 정부가 해서는 안 될 독재를 저질러놓고 독재체제를 반대하는 사람을 처벌하거나 완전히 적반하장 격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역시 방법이 없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대통령 각하와 자유민주주의 회복과는 아주 숙명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결국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위해서는 한쪽을 희생할 수밖에 도리가 없었습니다. (주석 11)
주석
9> 안동일, 앞의 책, 108~109쪽.
10> 신용구, 『박정희 정신분석, 신화는 없다』, 243쪽, 뜨인 돌, 2000.
11> 안동일, 앞의 책, 1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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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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