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제주교육청?대구교육청은 오랜 논의를 거쳐 IB본부와 ‘한국어화한 IB’를 2020년부터 시범도입한다는 내용의 협력각서를 체결했다. 이는, IB를 벤치마킹해 우리 사회와 교육에 맞게 자체적으로 개발한 KB 체제 구축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 사진은 2017년 12월 3일 제주도교육청 주최로 열린 IB 관련 세미나 모습.
오마이포토
이혜정 소장은 보다 전면적인 시험개혁을 제안한다. 김원태 소장의 '시민교과 바칼로레아'에 비해 모든 과목을 아우른다는 점에서 '스케일이 다르다'. 쉽게 말해 내신시험과 수능시험을 모두 논술시험으로 치르고 그에 따라 모든 과목을 논술시험을 위한 공부를 하게 하자는 것. 어느 한 과목에서만 교육 및 평가 시스템이 바뀐다고 하여 우리 교육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절대평가가 전제된대도 그렇다. 오히려 그는 "궁극적으로 절대평가가 바람직하지만 상대평가 체제 하에서도 시험개혁을 통한 교육개혁은 가능"하다고 말한다.
전과목의 평가 체제 전환이라니 엄두가 안 날 법하지만 다행히 모범사례들이 있으니 이를 참고하자는 게 그의 구체적 대안이다.
"저의 궁극적 대안은 KB(한국형 바칼로레아) 시스템 구축입니다. 한 번에 이룰 수는 없고 단계를 밟아야 합니다. 21세기에 적합한 평가 및 교육과정 체제로 이미 한국어화 착수가 결정된 IB(국제 바칼로레아)를 시범도입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IB를 벤치마킹해 우리 사회와 교육에 맞게 자체적으로 개발한 KB를 만들자는 겁니다. KB란, '한국형 전과목 논술형 내신·수능 시험 체제 및 그 교육과정'으로 2017년 서울시교육청 IB 연구보고서(비판적 창의적 역량을 위한 평가체제 혁신 방안: IB 사례를 중심으로)에서 최초로 공식 사용한 용어이고 현재 교육계에선 어느 정도 보편화된 용어입니다. 최근 유은혜 교육부장관이 2028년부터 논술형 수능을 시행할 것을 예고했는데 KB를 염두에 두고 한 발언으로 보입니다."
IB나 KB를 우리 교육계의 화두로 만든 데엔 이 소장의 기여가 크다. 그는 2017년 발간한 저서 <대한민국의 시험>에서, 우리 교육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기 위해서는 바칼로레아식 수능을 개발하고 공정한 채점이 가능한 체제를 구축해야 하므로 그 초기 실천방안으로 50여년간 전세계에서 검증된 IB(국제 바칼로레아)를 한국어로 일부 학교에 시범 도입하자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IB란 말 그대로 국제적으로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는 교육과정과 대입시험이다. 처음 해외 주재 외교관 자녀들이나 해외 상사 주재원 자녀들을 대상으로 공인된 교과과정과 평가기준을 위해 생겨났다. 스위스의 비영리공적교육재단인 IBO에서 1968년에 대학입학 자격을 위해 IB 디플로마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우리나라 고등학교 2,3학년에 해당하는 연령대 학생들이 2년간 그 프로그램을 이수하여 IB 대입시험을 치르면 대학입학 자격을 받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에도 IB를 도입한 학교들이 있긴 하지만 모두 영어판이 적용되는 국제학교나 외국인학교, 외고의 국제반 등이다. 영어판이어도 국내학력을 인정받는 학교들에서 이수하면 수능최저 등급을 요구하지 않는 수시전형으로 서울대, 고대, 연대 등 국내 대학에 진학할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IB 이수자들은 해외 대학 진학 목적의 학생들로, 국내 공교육 차원에서는 IB가 널리 논의되지는 못했고 특별한 학교들의 특별한 교육과정으로 이해되고 있을 뿐이다. 이 소장은 일단 IB 한국어판을 공립학교들에 시범도입한 뒤 그 씨앗을 키워내 궁극적으로 KB 체제를 자체 개발하자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국가 차원에서 전과목 논술형 평가와 교육 체제를 구축하며 우리 교육을 완전히 혁신할 것을 주장한다.
과연 IB에선 어떤 문제들이 출제되기에 '평가가 교육을 바꾸'며 혁신이 일어난다는 것일까. 그의 책에 실린 IB 수능 국어 문제들을 살펴보자.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형상이나 사물에 대해 마음속으로 그려보는 힘을 상상력이라 한다. 공부했던 둘 이상의 시인들의 시에서 시인의 독특한 상상력이 발휘되었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찾고, 그것이 가지는 효과에 대해 비교와 대조를 통해서 설명하십시오." (2시간)
시간은 문학 작품의 중요한 주제이다. 시간은 '미래를 위한 희망', '잃어버림과 슬픔', '추억의 중요성' 등 인간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공부했던 작품 중에서 시간의 중요성에 대해서 논하시오. (2시간)
지금껏 우리의 문학 교육은 관련 문제집과 함께 암기 위주로 공부하는 정답 있는 문학 교육이었다. 이런 교육으론 위 문제들에 몇 줄 쓰는 것조차 쉽지 않다. 위 문제들을 풀려면 IB 프로그램에 따라 다양한 문학 작품들을 통째로 읽으며 비판적으로 감상하고 그 감상을 나의 언어로 창의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문학 공부를 해야 한다.
다른 과목의 문제들도 살펴보자.
외국어 - 서로 다른 전통들을 되새기기 위해 시 의회가 전통복장을 입고 참여하는 파티를 개최합니다. 당신의 친구에게 당신이 어떤 의상을 선택했고 그것을 왜 선택했는지 기술하는 이메일을 쓰십시오.(1시간 30분)
미술 - 십대를 겨냥해 '브러시 업'이라는 헤어 및 미용 제품을 위한 포장용품을 디자인하십시오. 자신의 빗, 손톱깎이, 가위, 면도기 등 관련 아이템들을 분석하고 이를 디자인의 시작점으로 삼으십시오.(8시간) / 2년의 교과과정에 걸쳐 다양한 시각예술 활동들을 진행하고, 여기에서 이루어진 실험, 탐구, 도구 활용, 개선을 보여 주는 자료들을 엄선해 제출하십시오.(창작 과정 포트폴리오)
역사 - 1947~1964년에 미국의 봉쇄 정책이 초대강국들의 관계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십시오.(1시간)
이 소장의 저서들에 수학 과목의 IB 문제는 실려 있지 않다. 그러나 교육 선진국들의 다큐들을 보면 수학 시험에서 답이 틀려도 풀이과정에 따라 점수들이 부여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임이 확인된다. 핀란드의 경우 시험 시간에 계산기를 이용할 수 있고 공식이 시험문제에 아예 주어진다. 그곳에서 수학 시험은 빠른 계산 기술, 공식 암기 능력 테스트가 아니다. 당연히 수학적으로 사고하는 진정한 수학 교육이 실현되게 된다.
이 소장은 이와 같은 새로운 평가 시스템을 개발해야만 그에 따른 새로운 교육도 가능해진다고 믿는다. 그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 이 소장은 「대한민국의 시험」과 같은 대중서를 집필하고 칼럼을 쓰며 거듭 그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그 노력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어 지난해 7월 제주교육청·대구교육청은 IB본부와 한국어화한 IB를 2020년부터 시범도입한다는 내용의 협력각서를 체결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대학 수시전형을 염두에 두고 일부 학교 또는 일부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단계일 뿐이다. 전국에서 단 두 교육청에서만, 그것도 제주의 경우 단 한 학교에서만 시범실시되는 정도다. 갈 길이 멀다. 이에 대해 이 소장은 IB의 시범 실시를 보다 확대하고 KB 체제 구축에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펼쳐져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2013년부터 국가 차원에서 IB를 자국어화하여 공립학교에 도입을 시작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일본은 신메이지유신이라 불리는 교육혁명을 벌써부터 시작했는데 우리는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처럼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고집하는 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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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줄세울 수밖에 없다면 타당하게 줄 세워야"(http://omn.kr/1n2oo)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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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사회과 교사였고, 로스쿨생이었으며, 현재 [법률사무소 이유] 변호사입니다. 무엇보다 초등학생 남매둥이의 '엄마'입니다. 모든 이들의 교육받을 권리, 행복할 권리를 위한 '교육혁명'을 꿈꿉니다. 그것을 위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글을 씁니다. (제보는 쪽지나 yoolawfi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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