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 바로 앞에 있는 영은문 주초. 서울시 서대문구 현저동에 있다. 현재는 영은문 전체가 남아 있지 않고 그 일부인 주초만 남아 있다. 사진 왼쪽 하단의 비석에 ‘영은문 주초’라고 쓰여 있다. 영은문은 처음에는 명나라 사신에 대한 환영의 뜻으로 세운 문이다. 나중에 인조정권과 그 후계자들은 청나라 사신에 대한 환영의 뜻으로 이 문을 활용했다.
김종성
독립협회는 자주독립국가의 결의를 다지고 위상을 강화하는 국가적 상징물로서 독립문을 세우기로 하였다. 이는 독립협회의 주요 목적사업이 되었다.
전통적으로 청국 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이 헐린 장소인 서대문구 현저동에 독립문을 세우기로 하여 고종황제의 동의를 받았다. 1896년 11월 21일 정초식을 거행하여 1년 뒤인 1897년 11월 20일 준공을 보기에 이르렀다.
서재필은 독립문을 건립하게 된 배경을 『독립신문』을 통해 널리 소개하였다.
오늘 우리는 국왕께서 서대문 밖 문의 옛터에 독립문이라고 명명할 새로운 문을 세우기로 결정한 사실에 기뻐한다. 우리는 그 문에 새겨질 이름이 한국어(언문)로 조각될지 알지 못하지만 그렇게 되길 바란다.……이 문은 다만 중국으로부터의 독립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으로부터, 러시아로부터 그리고 모든 유럽 열강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조선이 전쟁의 폭력에서 열강들에 대항하여 견딜 수 있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조선의 위치가 극히 중요하여 평화와 휴머니티와 진보를 위해서 조선의 독립이 필요하며, 조선이 동양 열강 사이의 중요한 위치를 향유함으로 보장하도록 위치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그러한 것이다. 전쟁이 조선의 주변에서 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 머리 위에서 쏟아질 것이다. 그러나 힘의 균형의 법칙에 의하여 조선은 손상 받지 않고 다시 일어설 것이다.
독립문이 대성공을 거두길, 그리고 후세들이 독립문을 가리키며, 이것을 만든 백성들에게 영국인, 미국인, 프랑스인 같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그들 선조들의 영광스러운 성취를 나타낼 때 받는 느낌과 같은 느낌을 느끼기를 바란다. (주석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