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재의 다른 글 ▲황룡전적지 기념탑에 조각된 동학농민군들. 장태를 굴리며 관군에 맞서는 모습이다.이돈삼 동학농민군은 근대식 무기인 소총과 대포로 무장한 일본군과 관군에 대항하여 40~50 차례에 걸쳐 혈전을 벌였다. 그러나 낡은 화승총을 비롯 죽창이나 농기구로 무장한 동학농민군에 비해 일본군은 스나이더 소총과 무라타 소총 등 현대식 병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대포까지 끌고 왔다. 동학농민군의 화력과 일본군의 화력은 어림잡아 1: 250의 수준이었다. 큰사진보기 ▲의병들이 사용했던 화승총들눈빛출판사 제공 영국에서 개발되어 수입한 스나이더(snider) 소총은 일본이 메이지 정부의 찬반 세력간에 벌어진 내전(1868년) 때에 처음으로 사용되었으며 1874년 일본의 타이완 침략 때도 사용되었던 신형무기다. 이 소총은 영국제 엔필드 소총을 개량하여 만든 것으로 후발식 단발 소총이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사용했던 조총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우수한 성능의 소총이었다. 동학농민군을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조선에 들어온 일본군 후비병(後備兵)과 서울 수비대는 물론 동학농민군 학살을 전담한 제19대대 (대대장 미나미 고시로)의 주력무기가 바로 이 스나이더 소총이었다. 스나이더 소총은 일부 조선 경군에게도 지급되었다. 이 소총은 우금치 전투를 비롯한 각 지역의 전투에서 수많은 동학농민군을 살상하는 주무기가 되었다. 일본은 동학농민군의 학살을 위해 스나이더 소총과 탄약 10만 발을 일본 시모노세키 소재 병기창에서 실어왔다. (주석 12) 스나이더 큰사진보기 ▲동학농민군으로 분장한 학생들이 관작리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예산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으로 들어서고 있다.이재형 소총이 영국산이라면 무라타 소총은 일본이 직접 개발한 병기다. 메이지 정부는 일본열도의 통일을 이룬 다음 1871년 각 번(蕃)이 소유하고 있던 모든 병기류를 중앙정부에 이관토록 명령하였다. 이 때 중앙정부에 이관된 서양 소총이 무려 18만 여 종에 이르렀다. 메이지 정부는 이렇게 모은 소총을 각 지방에 나눠주는 한편 총포류의 통일을 기도하여 1878년부터 소총개발에 착수하였다. 2년 여의 제작 및 시험 기간을 거쳐 무라타(村田經芳)가 소총 개발에 성공하고 그의 이름을 따서 무라타 소총으로 명명하였다. 이 소총은 1882년부터 일본군에 배치되고 실전에 사용한 것은 동학농민전쟁과 청일전쟁 때이다. 동학농민군을 학살하는 데는 이 두 가지 병기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주석 13) 큰사진보기 ▲교장바위와 추모탑동학농민혁명 당시 동학군 패잔병들이 일본군에게 타살 당했던 태안읍 백화산 교장바위 아래에 1976년 '갑오동학농민혁명군추모탑'이 세워졌다. 지요하 조선은 임진ㆍ정유왜란 때 일본군의 주무기인 조총으로 엄청난 인명 살상의 피해를 입었다. 유성룡의 『징비록』에 따르면, 전후에 대마도주(主)가 조정에 조총과 앵무새를 선물로 보냈는데, 선조 정부는 앵무새는 날려 보내고 조총은 폐기했다고 한다. 임진ㆍ정유왜란의 혹독한 전란을 겪고도 정부는 국방을 제대로 대비하지 않다가 4백여 년 만에 다시 침략을 당하고, 일본은 그동안 조총보다 훨씬 우수한 영국제 스나이더 소총을 도입하고, 무라타 소총을 자체 개발한 것이다. ▲관군에 맞서 싸우고 있는 동학농민군들. 황룡전적지 기념탑에 새겨진 부조물이다.이돈삼 동학농민군은 이같은 일본군의 화력으로 30만 명의 희생자를 내게 되었다. 김개남 부대가 청주성 전투에서 패배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주석 12> 앞의 책, 19쪽. 13> 박맹수, 앞의 글.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동학혁명 #김개남장군 #동학혁명_김개남장군 #무라타소총 #화승총 추천9 댓글 스크랩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구독다음 채널구독 10만인클럽 10만인클럽 회원 김삼웅 (solwar) 내방 구독하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이 기자의 최신기사 26세, 가족과 함께 만주 망명 구독하기 연재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 다음글63화일본군에 밀려 패퇴를 거듭 현재글62화일본군, 스나이더와 무라타소총으로 무장 이전글61화청주성 공격, 일본군에 패배 추천 연재 와글와글 공동육아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여주양평 문화예술인들의 삶 "마지막 대사 외치자 모든 관객이 손 내밀어... 뭉클" 최병성 리포트 사진에 담긴 진실... 이대로 두면 대한민국 끝난다 이태원 참사 생존자의 이야기 "사과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날 서점은 눈물바다가 됐다 SNS 인기콘텐츠 "끝내자 윤건희, 용산방송 거부" 울먹인 KBS 직원들 이창수 "김건희 주가조작 영장 청구 없었다"...거짓말 들통 "무인기 사태 후 파주 읍내에 중무장 군인들 깔렸다" '나체 시위' 여성들, '똥물' 부은 남자들 49명의 남성에게 아내 성폭행 사주한 남편 영상뉴스 전체보기 추천 영상뉴스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망언도 이런 망언이..." 이재명, 김문수·김광동·박지향 파면 요구 "한달이면 하야" 언급한 명태균에 민주당 "탄핵 폭탄 터졌다" AD AD AD 인기기사 1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2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3 49명의 남성에게 아내 성폭행 사주한 남편 4 일본군이 경복궁 뒤뜰에 버린 명량대첩비가 있는 곳 5 '나체 시위' 여성들, '똥물' 부은 남자들 Please activate JavaScript for write a comment in LiveRe. 공유하기 닫기 일본군, 스나이더와 무라타소총으로 무장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밴드 메일 URL복사 닫기 닫기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취소 확인 숨기기 이 연재의 다른 글 64화일본군의 거미줄 같은 정보망 63화일본군에 밀려 패퇴를 거듭 62화일본군, 스나이더와 무라타소총으로 무장 61화청주성 공격, 일본군에 패배 60화후방의 '민보군' 진압하느라 북상 늦어 맨위로 연도별 콘텐츠 보기 ohmynews 닫기 검색어 입력폼 검색 삭제 로그인 하기 (로그인 후, 내방을 이용하세요) 전체기사 HOT인기기사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미디어 민족·국제 사는이야기 여행 책동네 특별면 만평·만화 카드뉴스 그래픽뉴스 뉴스지도 영상뉴스 광주전라 대전충청 부산경남 대구경북 인천경기 생나무 페이스북오마이뉴스페이스북 페이스북피클페이스북 시리즈 논쟁 오마이팩트 그룹 지역뉴스펼치기 광주전라 대전충청 부산경남 강원제주 대구경북 인천경기 서울 오마이포토펼치기 뉴스갤러리 스타갤러리 전체갤러리 페이스북오마이포토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포토트위터 오마이TV펼치기 전체영상 프로그램 쏙쏙뉴스 영상뉴스 오마이TV 유튜브 페이스북오마이TV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TV트위터 오마이스타펼치기 스페셜 갤러리 스포츠 전체기사 페이스북오마이스타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스타트위터 카카오스토리오마이스타카카오스토리 10만인클럽펼치기 후원/증액하기 리포트 특강 열린편집국 페이스북10만인클럽페이스북 트위터10만인클럽트위터 오마이뉴스앱오마이뉴스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