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미스 프레지던트>의 한 장면
단유필름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이하 박사모)은 한때 친박세력 혹은 극우세력의 대명사였다. '박사모 현상'이라 할 만한 센세이션도 일으켰다. 박정희나 1970년대에 향수를 가진 사람들이 이들의 집회에 참석해 박정희와 박근혜를 연호했다.
박사모 회원들의 일상을 추적한 2017년 다큐멘터리 <미스 프레지던트>는 아침마다 선비 복장을 하고 의관을 정제하는 조육형 농민을 보여준다. 그는 그런 차림으로 박정희·육영수 영정에 절한 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을 낭송한다. 그런 다음에야 부모님 영정에 절을 올린다. 청주에 사는 그는 박사모 집회에 참석하고자 자비를 들여 서울역까지 부지런히 행차한다.
울산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종효 사장 부부는 식당 벽면을 박정희 부부 사진으로 도배해 놓았다. 이 부부는 "친일을 했다, 사람을 많이 죽였다 하지만, 나한테는 귀에 안 들어와"라며 이런 가치관이 싫으면 식사하러 안 오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말한다. 매상이 감소하는 한이 있더라도 식당 손님들한테 자기들의 가치관을 꼭 알려주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처럼 극우에 가까운 일부 한국인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다큐 영화 소재로까지 등장했던 박사모다. 그런 박사모가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 있다. 2016년과 2017년 탄핵정국 때만 해도 눈에 자주 띄었던 박사모가 어느 순간 희미한 존재가 되어 있다.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은 다음카페가 왕성했던 2004년 3월 생겼다. 2선 국회의원인 박근혜가 한나라당 지도자로 부각되던 때였다. 2002년 대선 당시 선거자금을 트럭째 불법 수수한 '차떼기 사건'으로 한나라당이 국민적 지탄을 받는 데다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2004년 3월 12일 국회 탄핵소추로 한나라당이 역풍을 받고 있을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 3월 23일 한나라당 임시전당대회에서 박근혜가 51.8% 득표로 새 대표로 선출됐다.
당시 한나라당 출입기자였던 천영식 문화일보 기자가 <박근혜, 나는 독신을 꿈꾸지 않았다>에서 "박근혜는 차떼기로 위기에 빠진 한나라당의 유일한 구원투수였다"고 한 것처럼, 이 시기 박근혜는 좀 과장되게 말하면 보수세력의 구세주였다. 그 구세주가 한나라당 신임 대표가 된 지 일주일 뒤인 3월 30일, 정광용이라는 전직 CF 감독 겸 광고회사 사장에 의해 박사모가 생겨났다. 박근혜의 지도자 부각과 거의 정확히 때를 같이해 출현했던 것이다.
노무현 팬클럽으로 출발한 노사모의 정식 명칭은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노사모에서 '노무현'뿐 아니라 '사람들'도 함께 강조된 것과 달리,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에서는 박근혜만 강조되고 있다. 가벼이 볼 수도 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차이다.
처음부터 정치 결사체 지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