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11일 제19대 국회의원선거일, 서울 종로구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한 유권자가 투표하고 있다.
남소연
역대 총선날짜를 살펴보니, 우리나라 국회의원 선거일은 공통점을 찾기 어려울 만큼 들쭉날쭉했다. 1대 제헌국회부터 4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모두 5월에 치러졌지만, 그 후로 7월, 11월, 6월, 2월 등 투표일이 달랐다. 투표일이 '4월'로 굳어진 건 15대(1996년) 총선부터다. 그 후로 투표는 4월 9일~13일 사이에 진행됐다.
이는 15대 총선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투표일 결정 방식이 '공고주의'에서 '법정주의'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공고주의는 선거를 하겠다고 알리는 이가 선거일을 정하는 방식이고, 법정주의는 선거일을 법으로 정해두는 방법을 의미한다.
대한민국 출범 이후 처음에는 공고주의를 따랐다. '6개월 안에 선거를 실시한다'는 등의 포괄적인 기간만 정해놓고 구체적인 날짜는 대통령이 결정했다. 이는 최고 권력자에 모든 결정 권한을 줬던 후진적인 정치체제와 관련이 있다.
하지만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선거 날짜에 따라 각 당 후보자들의 득실이 엇갈리기 시작하면서 갈등이 생겼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제5공화국의 헌법을 바꾸기 위해 여야가 협상했던 1987년 당시, 차기 선거일을 놓고 정치권의 갈등은 상당했다.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과 제1야당이었던 통일민주당은 이해득실에 따라 각각 1988년 2월, 4월에 선거를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결국 '(총선을) 새 헌법 공포일부터 6개월 이내에 실시한다'는 내용만 새 헌법에 부칙으로 끼워 넣었다.
제6공화국의 헌법은 1987년 10월 29일에 공포됐다. 그로부터 6개월 뒤인 1988년 4월 29일까지 제13대 국회의원선거를 치러야 했던 셈이다. 같은 해 12월 노태우를 대통령으로 배출한 민주정의당은 그 기세를 몰아 총선에서도 우위를 점하기 위해 선거를 되도록 빨리 치르길 원했다. 반면 선거에서 패배한 통일민주당과 평화민주당 등 야당은 가능한 총선 시기를 늦추려 했다.
갈등 속에서 선거일을 둘러싼 논의가 지연되자 1988년 3월 민주정의당은 야당 쪽에 선거를 4월 하순에 치르자고 제안했다. 야당이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자 노태우 대통령은 4월 26일에 선거를 실시하겠다고 공고했다.
이후 제14대 총선(1992년)에서 선출된 국회의원들은 1994년, 선거일로 인한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아예 날짜를 법적으로 못 박자는 데 합의했다. 공직선거법을 만들어 선거일을 '임기만료일 전 50일 첫 번째 목요일'로 정했다. 법정주의가 시작된 시점이다. 그때를 기준으로 총선은 지속적으로 4월에 치러지고 있다.
선거일 목요일에서 수요일로 바뀐 까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