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12월 29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대선 후보 마지막 TV 토론에 참여한 민진당 당시 후보인 차이잉원 총통(왼쪽)과 국민당의 한궈위 당시 후보.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중국 정부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금과옥조처럼 고수한다. 내부 소수민족들은 물론이고, 홍콩·마카오 역시 물론이고, 타이완(대만)까지도 이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다. 한국이나 미국 같은 외국에 대해서도 이 원칙의 존중을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하나의 중국'을 위협하는 기운들이 점차 고개를 들고 있다. 홍콩에 이어 타이완(대만)에서도 그렇다. 11일 타이완 총통선거에서 '하나의 중국'을 반대하는 민진당(민주진보당) 소속의 차이잉원 현 총통이 국민당의 한궈위 및 친민당의 쑹추위를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우리말 이름이 채영문(蔡英文)인 차이잉원은 2019년 중반까지도 한궈위에 밀렸었다. 한궈위 가오슝 시장이 차기 총통이 될 걸로 예상되고 있었다. 한류(韓流)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궈위(한국유·韓國瑜)의 인기가 높은 데다가, 중국의 압박으로 차이잉원 정부의 외교적 고립이 심화되고 거기다가 경기침체 국면까지 겹쳐졌기 때문이다.
독립운동가 김원봉은 중국에서 세칭 황포군관학교(중국국민당 육군군관학교)에 다녔다. 한궈위는 이 학교와 인연이 있다. 그의 아버지도 이 학교 출신이고, 그 자신은 이곳을 계승한 중화민국 육군군관학교를 다녔다.
2002년까지 3선 입법의원(국회의원)을 지낸 한궈위는 16년간 정치권과 거리를 두며 농산물도매공사 사장 등을 역임하다가 2018년 11월 지방선거를 통해 정계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화려한 복귀'라고 말한 것은 민진당이 20년간이나 차지하고 있었던 가오슝시 시장직에 도전해 승리했기 때문이다.
그런 한궈위가 총통선거에서도 승리할 것으로 예상됐었지만, 이를 한 번에 뒤집은 일이 2019년 6월부터 본격화된 홍콩 시위다. 홍콩인들이 거대한 중국에 맞서면서도 끝내 밀리지 않는 모습이 타이완 내의 반중국 정서에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했다. 이는 친중국파인 국민당 후보보다는 반대편인 민진당 후보한테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낙선이 점쳐졌던 차이잉원은 '압도적'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손쉬운 승리를 거뒀다. 의외였다.
직선제가 실시된 1996년 이후의 역대 총통선거에서 최고 득표율은 국민당 마잉주 후보가 2008년 선거 때 기록한 58.5%다. 이번에 차이잉원의 득표율은 57.1%로 역대 2위다. 2006년 선거에서도 56.1%라는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차이잉원은 이번에는 힘들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득표율을 1%포인트 높이면서 역대 2위를 기록했다. '하나의 중국'에 대한 타이완인들의 경계심이 어떠한지 실감케 하는 일이다.
차이잉원은 2016년 선거에서도 반중국 정서의 덕을 봤다. 선거 막판에 쟁점화된 쯔위 사건은, 2016년 1월 17일자 타이완 <연합보> 기사에 인용된 타이완 중국연구원 인문사회과학센터 쑤신황 연구원의 분석에 의하면, 차이잉원의 득표율을 1~2%포인트 올려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걸그룹 트와이스 멤버인 쯔위는 2015년 11월 한국 TV 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타이완 국기를 흔든 일로 인해 중국인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고, 중국 사업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소속사 JYP의 영향으로 인해 사과의 뜻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타이완 여론을 들끓게 해서 차이잉원 후보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
차이잉원의 승리는 4년 전에는 쯔위 사건, 금년에는 홍콩 시위의 영향을 받았다. 물론 차이잉원 자신과 민진당의 노력에 기인한 바도 크지만, '하나의 중국'을 둘러싼 객관적 분위기가 그의 초선과 재선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처럼 '하나의 중국'에 대한 거부감이 홍콩과 타이완에서 확산되는 분위기를 좀더 증대시키려고 노력하는 쪽이 있다. 그런 분위기를 여타 지역으로도 전이시키려고 노력하는 쪽이다. 바로, 미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