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리인생학교에서는 자신의 관심분야에 대해서는 모든곳이 캠퍼스이다. 비건페스티벌에서 친구들과 함께
꿈틀리인생학교
이 부분을 읽고 '나는 꿈틀리 인생학교에 가야겠어!' 라고 결심했던 기억이 생생한데, 벌써 꿈틀리 인생학교 졸업소감문을 쓴다니. 자기소개서도 예비학교 소감문도 아닌 졸업소감문을. 이제는 진짜 현실로 돌아올 시간이 되었나보다.
무엇을 쓸지 고민하다가 다시 읽어본 자기소개서에는 내가 하고 싶은 걸 찾겠다는, 내 항로를 정하고 싶다는 결심이 적혀져 있었다. 지금 다시 읽어본 내 소감은, '나 자신을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내가 하고 싶은 걸 찾아?'다.
나를 안다는 게 뭔지 몰랐고, 그래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다. 그저 '평범한 중학교의 한 학생'이 나의 정체성이었다. 김수연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한 중학교에 속한 김수연으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같은 옷을 입고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똑같이 생긴 교실에서 뒷모습이 모두 똑같은 채로, 신발이나 안경, 양말, 겉옷이 무채색이 아닌 경우 눈에 띄게 되고, 갈 곳이라고는 교실과 학원, 집이 반복되는 세상이었으니.
하늘이 예쁘다는 말을 하면 '감성충'이라는 말을 들었고, 안경 벗고 화장하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내가 마음에 드는 신발을 신고 학교에 가는 날이면 친구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내가 살던 세상은 내가 나로서 존재할 틈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나답게 살 용기가 없었다.
꿈틀리의 사람들은 나의 감성과 로망들을 사랑해주었고(웃을 때도 있었지만ㅎ) 나의 조용한 모습을 불편해하지 않았으며, 내 모습 있는 그대로를 아껴주었다. 나다운 것들을 마음껏 분출해도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 나의 나다움을 존중해주는 사람들이었다.
좋아하는 옷을 입고, 끌리는 걸 보러 다니고 찾아다니는 나의 '옆을 볼 자유'는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계속해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가고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실천하면서 나다움을 찾아갈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렇게 1년을 지내다 보니 '다른 것의 일부로써'가 아닌 나로서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꿈틀리 인생학교에서의 1년은 가장 나답게 살 수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