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 회장이 지난 2018년 1월 16일 서울가정법원에서 열린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의 이혼소송 2회 조정기일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SK는 어떻게 이동통신 사업자로 선정됐나
정권과 재벌의 정경유착이 지금보다 훨씬 심했던 시절이다. 최종현 회장이 청와대 사돈의 힘으로 선정된 게 아니냐는 의심의 목소리가 많았다. 1992년 8월 20일자 <동아일보>는 '사돈 회사에 이동통신인가'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2이동통신의 사업자 선정이 연기론이 무성한 끝에 마침내 선경그룹이 대주주로 참여하는 대한텔레콤으로 결정됐다. 이미 충분히 예견되었던 일이다. 이동통신의 사업자 선정이 시작됐을 때부터 업계는 선경이 이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문제는 선경이 이를 차지하는 데 필요한 자금 동원, 영업력, 기술 축적 면에서 다른 회사를 압도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문제가 있을 수 없다. 일반의 확신은 그런 데 있지 않았다. 선경이 현직 대통령과 사돈 관계에 있다는 것이 그 확신의 뿌리였다."
당시의 SK가 자금·영업·기술 면에서 압도적이었다면, 노태우의 사돈이라 해도 뒷말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기에 정경유착 의혹의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노소영의 소송 전략은 아버지가 SK의 자산 증식에 기여했음을 입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입증을 잘해내게 되면, 노태우 정권과 SK의 정경유착이 확실히 입증된다. 정권과 재벌들의 유착 관계가 이를 통해 보다 더 선명하게 입증될 수 있을 것이다. 여타 재벌들은 남 일이라고 팔짱 끼고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소송을 통해 재벌의 어두운 면이 좀더 명확히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노소영이 입증을 잘하면, 재벌의 어두운 면이 확실히 드러난다. 최태원이 입증을 잘해도 어느 정도는 그렇게 될 수 있다. 최태원의 소송전략은 선대 회장 때부터 재산이 축적됐음을 입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전략으로 그가 입증을 잘하게 되면, 한국 재벌의 자본축적 과정이 어느 정도 드러날 수 있다.
적산의 헐값 인수라는 '행운'
최종건이 1953년에 인수한 선경직물은 선만(鮮滿)주단과 경도(京都)직물의 합작으로 1939년 설립된 회사다. '선만'과 '경도'의 앞 글자를 따서 '선경'이라 불렸던 것이다. 여기서 SK라는 지금의 이름이 나오게 됐다.
일제 패망과 함께 선경직물은 미군정의 관할을 거쳐 이승만 정권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적국 일본인의 재산이라 하여 적산기업으로 분류됐던 것이다. 국민기업이나 공공기업이 됐어야 할 이런 적산기업들이 미군정 및 이승만 정권과 친한 기업들에게 헐값으로 불하되고, 이것이 한국 재벌의 자본축적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은 사실상 공짜나 다름없는 값으로 적산기업을 불하하면서도 외형상으로는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웠다. 적산기업과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한국인에게 소유권을 넘긴다는 것이었다.
최종건은 선경직물의 일반 사원이었다. 해방 1년 전인 1944년, 견습기사로 입사했다. 해방 뒤에 선경직물 관리인이 된 사람은 황청하와 김덕유였다. 이들은 주주라는 이유로 관리인이 됐다.
그런데 이들은 대주주가 아니었다. 총 50만 주 가운데 각각 100주씩을 보유한 소액주주들에 불과했다. '개미'인 그들이 관리인이 됐던 것이다. 국민들의 몫으로 돌아가야 할 적산기업이 이렇게 '개미'들에게 돌아가는 일이 이 당시에는 비일비재했다.
황청하와 김덕유는 직물 사업에 관심이 없었다. 이 분야에는 문외한이었다. 그래서 최종건을 생산부장으로 임명하고 경영을 사실상 위임했다. 그 뒤 최종건은 섬유 장사를 한다면서 사표를 제출하고 나갔다. 이런 상태에서 한국전쟁이 벌어지고 황청하·김덕유가 더는 신경을 쓰지 못하게 되자, 최종건이 정부로부터 선경직물을 인수하게 됐다.
돈을 내고 불하받기는 했지만, 적산기업 인수는 그 자체로 행운이었다. 최종건한테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에 더해 이승만 정권의 특혜 지원까지 있었다. 이에 힘입어 최종건은 선경직물을 크게 키울 수 있었다.
한편, 최종건의 선경직물 인수는 여타 재벌의 적산기업 인수와 다른 측면이 있음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전쟁 중에 공장이 상당부분 파손된 상태에서 비록 적산기업이나마 인수해서 키운 것은 기업가적 정신의 발로였다고 평가할 만한 부분이 있다.
이처럼 SK의 성장 과정에서는 적산기업 불하와 이승만 정권의 특혜 지원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혼소송에서 SK의 재산축적 과정이 낱낱이 파헤쳐지다 보면, 이런 부분까지 거론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최태원 측은 적산기업 불하나 이승만 정권의 특혜 같은 것은 가급적 언급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소송이 격화되는 과정에서 그런 부분들이 거론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처럼 노소영 관장과 최태원 회장의 이혼소송은 한국 재벌의 부도덕한 자본 축적과 관련돼 있다. 그들이 서로 차지하고자 하는 재산은 엄밀히 말하면 국민의 몫이 됐어야 할 것들이다. 일제강점기 하에서 우리 민족이 강탈당한 재산과 더불어, 역대 정권의 특혜 지원 속에 허비된 국민의 혈세가 그 속에 녹아 들어 있다. 정확히 말하면 국민의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놓고 두 부부가 재산분할 소송을 벌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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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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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어두운 과거' 폭로하는 노소영 소송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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