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아이들에 관해서만 이야기했던 우리들이 어느 새 엄마인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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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화를 듣던 다른 엄마들도 덩달아 우리의 대화에 합류했다. 우리는 그때서야 긴 시간 동안 친하게 지내왔으면서도 서로의 이름조차 몰랐던 현실을 직면했다. 그리고 '사라진 이름'에 대한 사연들을 저마다 하나씩 털어놨다.
아이가 둘인 한 엄마는 큰 아이 모임에 가면 큰 아이 이름이 되고, 작은 아이 모임에 가면 작은 아이의 이름으로 불린다고 했다. 아이 둘이 함께하는 모임에 나갔을 땐, 두 가지 이름으로 자신을 부르니 어떤 게 나를 부르는 호칭인지 헷갈린다고 고백했다. 전업주부인 한 엄마는 오랜만에 동사무소에 가서 서류를 떼려고 이름을 적는데 자신의 이름이 낯설게 느껴졌다고 털어놨다. 병원에서 호명되는 자신의 이름이 어색하게 들린다는 엄마도 있었다.
나는 온갖 소소한 집안 사정을 공유하고, 반찬까지 나누어 먹는 정말 친한 이웃집 엄마와의 일이 떠올랐다. 나는 이 이웃의 이름을 무려 7년이나 모르고 지내다, 계좌이체를 해주면서 우연히 알게 됐다.
낯선 예금주명을 보고 전화를 걸어 "언니 이름이 ○○○ 맞아요?"라고 물었을 때의 그 느낌은 7년의 우정이 무색하리만큼 어색하기만 했다. 우리는 한바탕 웃으며 이런 사연들을 털어놨지만, 표정엔 서글픔이 스쳐지나갔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멤버 중 한 명이 이렇게 제안했다.
"야. 이거 진짜 '웃프다'(웃기고도 슬프다). 이제 우리는 이름 부르자. 다 이름 말해봐. 이제 이름 트는 거야."
그날 모인 5명의 엄마들은 알게 된 지 수년 만에 이름을 텄다. 처음엔 어색했다. 습관처럼 아이들 이름이 먼저 튀어나오곤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반복해서 '내 이름은 ○○야' 라고 알려주고 서로를 격려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대화의 화제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주로 아이들에 관해서만 이야기했던 우리들이 어느 새 엄마인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제야 이 엄마들과 진짜 친구가 된 것 같았다.
에피소드 2 : "아이는 어떻게 하고요?"
여름이 지나고 나는 대학원 박사과정에 복학했다. 집과 일터는 대구에 있고, 학교는 서울에 있는지라 매주 2회씩 KTX로 왕복하고 있다. 새벽에 집을 나서고 밤늦게 집에 돌아오기 때문에 집과 기차역 사이는 주로 택시로 이동한다. 이렇게 한 학기를 다니면서 내게 말을 건네주시는 '친절한' 택시 기사님께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있다. 바로 이거다.
"아이는 어떻게 하고요?"
나는 이렇게 답한다.
"제가 서울 가는 날엔 아이 아빠가 아침 챙겨주고, 저녁에도 일찍 퇴근해요."
그러면 주로 이런 답변들이 돌아온다.
"아이고. 남편분이 대단하시네요!"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가 멀리 살아요?"
"쯧쯧…"
그것도 아니면 별안간 이렇게 묻는다.
"왜 애는 하나 밖에 안 낳았어요? 아직 젊은데 애를 하나 더 낳아야죠."
이럴 때마다 나는 반박하고픈 말들이 입안 가득 차오른다. 하지만, 낯선 이의 사생활을 마음대로 재단하는 기사님들이 내 입장을 들어줄 것 같지는 않기에, 그저 입을 꾹 다무는 것으로 불쾌감을 전달할 뿐이다.
그렇게 답답한 마음을 안고 도착한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아직 초등학생인 내가 대구에서 통학한다는 사실을 처음 안 사람들은 대뜸 내게 이렇게 묻는다.
"그럼, 아이는 누가 봐요? 친정엄마? 시어머니?"
이들은 모두 선량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된 여성이라면 마땅히 엄마노릇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며, 육아는 아빠가 아닌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 즉 여성들이 맡아야 한다는 편견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드러내곤 했다.
'나답게' 살고픈 엄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