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5월 22일 계엄군이 광주 외곽으로 철수한 이후 시민군이 전남도청을 장악했다. 사진은 사태의 추이를 알고자하는 시민들이 도청 앞을 가득 메운 모습. 80년의 아픔을 광주시민과 함께 한 도청사 본관은 '아시아문화의 전당'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사진예술사에서 펴낸 황종건·김녕만 사진집 <광주,그날>에서 발췌)80년 5월 22일 계엄군이 광주 외곽으로 철수한 이후 시민군이 전남도청을 장악했다. 사진은 사태의 추이를 알고자하는 시민들이 도청 앞을 가득 메운 모습. 80년의 아픔을 광주시민과 함께 한 도청사 본관은 '아시아문화의 전당'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사진예술사에서 펴낸 황종건·김녕만 사진집 <광주,그날>에서 발췌)
공수부대가 곧 진입할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고 있는 가운데, 5월 하순의 광주는 스멀스멀 밀려드는 불안감으로 민주화운동의 여덟째 날을 맞았다. 5월 25일, '해방연력'으로는 4일째이다.
이날 이른바 '독침사건'과 '간첩조작사건'이 일어나 시민들을 당황케 만들었다. 계엄사 측에서 투입한 프락치들의 소행이었다.
"조사과에서 함께 일하던 장계범이 '독침에 맞았다'고 소리치며 왼쪽 어깨를 틀어잡고 쓰러졌다. 갑작스런 사태에 놀란 내가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도청 안에 침입한 불순분자가 나를 찔렀으니 상처부위를 빨아달라'고 했다. 그의 옷을 벗기고 입으로 상처부위를 빨아줬다. 장계범은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나는 정향규와 함께 장계범을 지프차에 태우고 전남대병원 응급실로 가서 내려주고 곧바로 도청으로 왔다. 그로부터 몇 분 후 아무래도 이상하니 전남대 응급실로 빨리 가보라는 명령을 받고 가서 보니 장계범은 도망가고 없었다. 이것이 조작된 '장계범 독침사건'이다. 이 사건 이후 도청내에는 불신풍조가 난무하여 친하지 않는 사람은 가까이하기를 꺼리게 되었다."(구술 : 신만식)
"오전 8시경 장계범이라는 사람이 '독침을 맞았다'고 소리쳤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옷을 벗기고 상처를 입으로 빨았다. 도청에 있던 차에 장계범을 싣고 전남대병원으로 옮겼다. 독침을 맞았다던 장계범은 이날 오후 병원에서 도망쳤다고 했다. 이 조작된 독침사건으로 도청 안은 간첩이 침투되었다는 등의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불안함을 견디지 못하고 도청을 빠져나간 사람이 많았으며, 시민들 사이의 불신이 심화되는 등 아주 혼란스러웠다. 그리하여 집행부에서는 '증'을 발행하여 이를 소지한 사람만이 도청을 드나들 수 있게 했다." (구술 : 구성주) (주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