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11.4cm, 높이 10cm라는 애매한 휴지의 크기, 어떻게 정해졌을까
류승연
살면서 두루마리 휴지를 딱 한 칸만 써본 적은 없었다. 화장실에서뿐 아니다. 바닥에 흘린 음식물을 닦을 때나 여름철 귓가를 어지럽히는 모기를 잡을 때도 휴지를 길게 늘여 최소 대여섯 칸을 찢어 사용했다.
그래서 의아했다. 두루마리 '한 칸'은 왜 그렇게 짧은지 말이다. 혹시 자원을 절약하라는 차원에서 짧게 만들어진 건 아니었을까. 한 칸만 써도 충분하다는 식으로 말이다. 포털 사이트를 찾아보니, 실제로 두루마리 휴지 한 칸이라는 말은 '아껴 쓰기'나 절약과 같은 단어와 함께 다녔다.
그렇다고는 해도 어차피 휴지를 한 칸보다 많이 쓰게 될 것이라면, 실용성을 생각해 처음부터 길게 만드는 게 낫지 않았을까. 휴지 한 칸, 길이 11.4cm 너비 10cm에 대한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손 길이는 제각각이지만 너비는 비슷
알고 보니 휴지 한 칸은 '절약'과는 관계가 없었다. 1970년대 중반,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두루마리 휴지를 대량생산했던 유한킴벌리쪽에 확인해본 결과, 한 칸의 사이즈는 한국인의 손 크기와 관련이 있었다.
이들은 성인의 '손길이'는 제각각이지만 '손 너비'는 비슷하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휴지를 한 손에 감고 쉽게 뜯어낼 수 있도록, 폭을 대한민국 성인 평균 손 너비보다 1cm-2cm 정도 크게 정한 것이다. 유한킴벌리의 한 관계자는 "모두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다른 나라도 손의 크기를 기준으로 만드는 건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민의 인체 치수를 조사하는 사이즈코리아(Size Korea)가 2003년과 2004년에 걸쳐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기간 20대부터 70대까지 성인 남녀의 손 너비는 최소 8.15cm부터 최대 8.35cm사이이고 휴지의 폭은 9.5cm-11cm이다.
그렇다면 휴지는 왜 '절약'이라는 단어와 함께 다니는 것일까. 두루마리 휴지의 재료가 나무이기 때문이다. 나무를 베어야만 휴지가 나오는 만큼, 휴지를 적게 쓰면 그 만큼 환경을 보존하게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 셈이다.
휴지를 사용하면 환경이 훼손된다?
하지만 유한킴벌리쪽은 휴지를 많이 사용하면 환경이 훼손된다는 데 일부 오해가 있다고 말했다. 유한킴벌리 관계자는 "우리는 스칸디나비아와 북미에 만들어진 경상남도 크기의 인공림에서 나오는 펄프를 쓰고 있다"며 "몇 년마다 한 번씩 나무를 베어 쓰는 건 사실이지만, 친환경 인증을 받은 '나무밭'에서 채취하는 만큼 환경을 해친다고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조금 과장하자면, 매년 곡식을 재배하는 데 대해 환경을 해친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또다른 두루마리 휴지 제조사인 깨끗한나라 관계자는 휴지 사용이 환경을 해칠 수 있다는 생각에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라고 했다. 그는 "일부 휴지 제조사는 국제산림관리협의회에서 만든 지속가능한 산림경영 인증시스템, 'FSC 인증'을 받고 있다"며 "허가받은 나무 밭, 즉 조림지에서 펄프를 얻는 만큼 친환경적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친환경 인증을 받지 않은 곳에서 펄프를 채취하는 업체도 있다고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일반적으로' 두루마리 휴지를 몇 장이나 사용하고 있을까. 2017년 유한킴벌리 크리넥스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두루마리 휴지의 주 목적인 대변을 처리하는 데 평균 9.4칸이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변처리 등 다른 용도로 휴지를 사용하는 경우에도 6장 이상이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