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18 기간 중 열흘 동안 나오지 못한 <전남매일신문>은 6월 2일 발행 재개를 앞두고 있었다. 사진은 6월 2일자 <전남매일신문> 대장(최종판 이전 검토·편집을 위해 만든 원장부)이다. 계엄사령부가 검열한 '빨간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왼쪽이 1980년 6월 2일자 <전남매일신문> 3면 대장, 오른쪽이 최종 인쇄본이다. '죽음의 거리에도 태극기 펄럭', '주인 없는 구멍가게에 돈 놓고 물건 가져가', '헌혈길 비극에 간 어느 여고생' 등의 제목과 기사가 사라졌다. 또 '광주유혈사태'는 '광주시위사태'로, '눈물과 피로 범벅됐던 광주'는 '눈물과 피로 얼룩졌던 광주'로, '응어리 씻게 신뢰회복 절실'은 '정부·국민 간 신뢰회복 절실'로 교묘하게 바뀌었다.
소중한
『동아일보』는 5월 19일부터 5일간 사설을 뺀 채 신문을 발행했다.
이것은 자신들의 주장을 펼 수 없는 상황에서 최소한의 양식이며 저항의 표시로 볼 수 있다.
『동아일보』는 5월 24일 「유혈의 비극은 끝나야 한다」는 사설을 처음으로 싣고 있다. 고딕체로 쓴 이 사설에서 "정부는 사태를 직시하여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며 미봉책은 금물이라는 점을 인식하기 바란다. 그리고 우리는 광주시민들의 자중자애를 요구코자 한다. 비극적 상황 속에서도 시민들이 이성을 잃지 않고 무기를 회수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양비양시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주석
19> 한국기자협회-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 공편, 『80년 5월의 민주언론』, 80~81쪽, 나눔출판,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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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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