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히토 일왕이 마사코 왕후와 함께 지난 9월 24일 고령자센터를 방문하는 모습.
일본 궁내청 홈페이지
이렇게 낭만적이고 가정적인 그이지만, 앞으로는 상당히 거친 인생 역정 속으로 빨려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단순히 왕 자리에 올랐기 때문만은 아니다. 객관적 상황이 그를 그런 방향으로 끌어가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등장한 2001년 이후, 일본은 급격한 우경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제1기 아베 신조 내각이 출범한 2006년부터는 더욱 그렇다.
아베 신조는 전쟁을 금지한 헌법 제9조를 개정해 '군사대국화'를 추진하려고 한다. 그는 1964년에 이어 두 번째 도쿄 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을 기해 그 목표를 성취하고자 한다. 우익이 득세하는 지금 정국 상황을 볼 때, 꼭 2020년이 아니라도 이 목표는 계속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그로 인한 정치 불안정은 국제정치에도 영향을 주겠지만, 나루히토와 왕실의 운명에도 파급력을 끼칠 수 있다. 왜냐하면, 아베 신조를 비롯한 일본 우익이 바꾸고자 하는 국가체제가 이른바 천황제의 운명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아베의 '군사대국화'가 일본 왕실에 끼치는 영향
패망 이듬해인 1946년 제정된 현행 일본국헌법 전문(서문)은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선언"한다고 명시해 놨다. 그러면서도 헌법 제1조에서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자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이며, 이 지위는 주권을 갖는 일본국민의 총의에 기초한다"라고 규정했다. 주권재민을 선언하면서도 기존 천황제를 존치시킨 것이다.
그리고 제3조는 "천황의 국정에 관한 모든 행위는 내각의 조언과 승인을 필요로 하며 내각이 그 책임을 진다"라고 함으로써 정부 형태를 내각책임제로 규정했다. 과거와 달리 일왕은 국가주권도 없고 행정 실권도 없다는 점에서, 현행 일왕제도는 헌법 제1조의 문구를 따서 '상징 천황제'로 불린다.
이 같은 일왕의 지위는 패망 이전의 대일본제국헌법 때와 현저히 다르다. 제국헌법 제1조에서는 통치권이 일왕에게 있다고 선언했다. 제4조에서는 일왕이 국가원수로서 통치권을 총괄한다고 규정했다. 현행 헌법과 달리, 국민 주권이 인정되지도 않고 총리책임제가 인정되지도 않았다.
당시의 일왕은 여느 황제보다도 강력했다. 청일전쟁·러일전쟁·태평양전쟁을 지휘한 총사령부인 대본영은 총리의 명을 받지 않았다. 오로지 일왕의 명령만 받았을 뿐이다. 그래서 일왕은 내각의 간섭을 받지 않고 군대를 운용할 수 있었다.
이처럼 일왕이 막강했다는 점에서, 패망 전의 일왕제는 '절대 천황제'로 불린다. 백운룡 계명대 국제학연구소 전임연구원은 2007년 <동북아 문화연구> 제13집에 실린 '일본 천황제의 역사적 변모 과정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에서 "절대 천황제는 통치원리 자체가 국민의 주체적인 정치참여를 배제하고 천황에 대한 한결 같은 충성과 일체감을 요청하는 시스템"이었다면서 "천황제 내부에서는 입헌적 기구에 의한 민주 정치의 담보가 원래부터 예정되어 있지 않았다"라고 진단한다.
한국 역사에서도 증명되는 것처럼, 귀족 출신 신하들은 왕권이 강력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왕권이 세지면 신권(신하 권력)이나 귀족권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절대 천황제'를 좋아하는 일본 우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