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민당, 근로인민당등의 창당대회가 열렸던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참가자들이 설명을 듣고 있다.조선인민당, 근로인민당등의 창당대회가 열렸던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참가자들이 설명을 듣고 있다.
오마이뉴스 김호중
여운형은 천도교 강당에서 열린 창당대회 연설에서 4가지 목표를 제시했다.
첫째, 미ㆍ소 양국에 공정불편한 정책을 취하며, 둘째, 민족통일을 기초로 한 신흥국가로서 표현되어야 하며, 셋째, 봉건적 생산관계의 철저한 소탕과 개인적 창의를 허용하는 민주주의적 신경제체제를 수립하며, 넷째, 민족의 우수한 문화를 계승발양한다고 내세웠다.
근민당은 위원장 여운형, 부위원장 백남운ㆍ이영ㆍ장건상이 선출되고 김성숙은 박건웅과 함께 중앙위원으로 선임되었다. 근민당은 창당 두 달만에 여운형이 암살(1947. 7.19) 당하면서 곧 위기로 내몰렸다. 김성숙이 이정식 교수에게 전한 이 시기의 사연이다.
1947년 5월에 창당했는데 당수 여운형이 두 달 뒤인 7월 19일에 암살된 데다가 탄압이 심해져서 대중조직을 갖출 여가가 없었어요. 그러나 여운형 씨가 원래 지지자들이 많아서 여운형 씨 계통의 대중조직이 있었다고 봐야지요. 즉 원래 조선인민당하던 사람들, 사회노동당 하던 사람들, 조선공산당을 하다가 떨어져 나온 사람들, 이 세력이 모두 근민당 세력이 되었다고 봐야지요.
지금까지도 국내에 이 근민당 세력이 꽤 많습니다. 무시할 수 없지요. 국내에서 혁신세력이라고 하는 세력은 사실상 이 세력이 대종입니다. 조봉암이 많은 표를 얻고, 활발히 혁신정치 활동을 했다는 것도 그 지지 기반이 되는 대중세력이 그 계통이지요. (주석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