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숙 봉선사 전문창화강원 사미과 졸업증서 (1917. 7.15)김성숙 봉선사 전문창화강원 사미과 졸업증서 (1917. 7.15)
(사)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김성숙은 한문도 알고, 일도 열심히 하였으며, 불경을 배우는 속도도 아주 빨랐다. 용문사에서 그는 2년 반 가량 승려로서의 초보적인 것들을 모두 배웠다. 그러자 용문사에서는 김성숙을 경기도 광릉에 있는 봉선사(奉先寺)로 보내 불교 내전(內典)을 정식으로 배우게 했다.
당시 봉선사에는 홍월초라는 노승이 있었는데, 그 노승이 사실상 김성숙의 스승격이었다. 이 스님은 천도교의 교령인 손병희, 한용운 및 김법린과도 친하였다.
손병희가 오면 노승은 김성숙에게 시중을 들게 해 퍽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손병희ㆍ한용운 등이 3ㆍ1운동을 계획할 때 김성숙은 그 휘하에서 이런저런 심부름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3ㆍ1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주석 4)
김성숙은 봉선사에서 3년 간 머물면서 경전을 공부하는 한편, 사찰의 사무도 맡아 처리했다. 당시 봉선사 주지로 월초(月初) 거연(巨淵) 스님(1858~1934)이 주석하고 있었다. 그는 월초 스님에게 사미계를 받고, 1922년 4월 8일 성월(惺月) 일전(一全)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이 때 받은 법명 '성숙'은 평생 그의 이름을 대신했다.
그곳에서 민족대표 33인의 의암 손병희와 만해 한용운을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