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업성의 7월 1일자 발표문.
일본 경제산업성
"수출관리제도는 국제적 신뢰관계를 토대로 구축되는 것인데, 관계 성청(省廳)이 검토를 행한 결과 일·한 간의 신뢰관계가 현저히 손상됐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속에서 대한민국과의 신뢰관계 하에서 수출관리를 처리하기 곤란해진 것에 더해, 대한민국과 관련된 수출관리를 둘러싸고 부적절한 사안이 발생하기도 해서, 수출관리를 적절히 실시하자는 차원에서 아래에 적힌 바와 같이 엄격한 제도의 운용을 시행하고자 한다."
일본은 이번 조치의 주된 이유로 '한일간 신뢰 손상'을 꼽았다. 구체적 이유를 대지 않은 것을 봐도,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임을 알 수 있다. 중국과 미국 간의 무역분쟁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한국으로서는, 발등에 떨어진 또 다른 불에 긴급히 대처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일본의 보복 조치는, 자국과 거래하는 한국 대기업들이 강제징용·위안부피해자 등 식민지배 청산 문제에 대해 부정적인 목소리를 내도록 유도하기 위한 접근법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여론을 분열시켜 정부의 후퇴를 관철시키려는 의도로 읽힌다.
1950년대 한국발 무역분쟁, 그 배경
이번 사안처럼 식민지배 혹은 과거사 문제를 저변에 둔 한일 무역분쟁은 이승만 정부 때인 1950년대에도 자주 있었다. 이 시기에는 무역관계 자체가 두 차례나 중단되기도 했다.
1950년대 한국은 전쟁 피해를 복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무역분쟁이 발생했다고 하면, 분쟁을 일으킨 쪽이 일본일 것이라 여기기 쉽다. 한일 간의 경제적 격차가 훨씬 컸던 시절이니까. 하지만, 실제는 정반대였다. 분쟁을 일으킨 쪽은 경제적 약자인 한국이었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는 책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장하준·정승일·이종태의 쾌도난마 한국경제>에서 1950년대 한국 경제를 약간 단순화시켜 "만약 그랬다면, 우리는 아직도 여전히 1950년대처럼 생선 잡고 텅스텐 캐는 게 기간산업이었겠죠"라고 말했다.
박정희식 경제개발에도 긍정적 측면이 없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그런 경제개발이 없었다면 '생선 잡고 텅스텐 캐는' 1950년대 산업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거라는 게 그의 논지다. 약간 과장된 설명이기는 하지만, 그의 말처럼 1950년대 한국은 수출할 만한 물건이 별로 없었다. 텅스텐 같은 광물에 더해 쌀과 김 같은 해산물이 조금 있었을 뿐이다.
그런 상태로 어떻게 무역분쟁을 일으킬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나름대로 강력한 분쟁 수단을 찾아냈다. 한국이 수출할 게 별로 없었으므로 한국의 무역적자가 누적될 수밖에 없었다. 이 점을 활용해서 무역분쟁을 일으킨 것.
당시의 한일무역은 청산계정 방식으로 운영됐다. 일일이 현금결제를 하지 않고 대차관계를 장부에 기록해놨다가 정기적으로 차액을 현금결제하는 방식이었다. 일종의 외상거래였던 것이다. 한국 정부가 활용한 무역분쟁 수단 중 하나는 이 점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한국 정부는 변제할 금액이 많다는 점과 외상으로 거래하고 있다는 점을 활용했다. 외상 결제를 지연시키는 방법으로 일본에 타격을 주고자 한 것이다. 차철욱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연구교수의 논문 '1950년대 한일무역 중단의 정치적 성격'은 이렇게 설명한다.
"1950년대 한일무역은 기본적으로 청산계정이라는 외상결제 방식이었고, 일정액 이상의 미결제 부분이 존재하였다. 이러한 미결제는 1953년을 지나면서 급속히 증가했는데, 이는 1952년 이후 강하게 작용하는 이승만의 반일정책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었다. (중략) 수입액의 미결제 누적의 형식은 1954년 원조자금에 의한 대일 구매의 중지, 1955년 1차 무역중단, 1959년 2차 무역중단으로 이어진다." - 효원사학회가 2006년 발행한 <역사와 세계> 제30권
외상결제를 지연시키는 방법에서 출발해, 원조자금에 의한 대일 구매를 중지하는 방법과 아예 무역 자체를 중단하는 방법으로 무역분쟁 수단이 발달했다는 설명이다.
'원조자금에 의한 대일 구매 중지'라는 것은 미국에서 원조받은 자금으로 일본 상품을 수입하는 것을 제한하는 조치다. 미국 정부는 한국에 원조자금을 제공하면서, 그 자금으로 일본 상품을 구매할 것을 요구했다. 대한(對韓) 경제원조를 일본의 경제성장으로 연결하는 전략인 것이다.
미국은 일본을 강력한 동아시아 대리인으로 만들어 북한·소련·중국 같은 공산권을 견제하겠다는 발상에서 이런 방식을 한국에 요구했다. 따라서 원조자금으로 일본 상품을 수입하는 데 제한을 둔 조치는 일본에 대한 무역제재인 동시에, 미국의 일본 중시 정책에 대한 반발이기도 했다.
중단된 무역은 한일 쌍방피해를 부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