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도청 녹취록을 인용해 `떡값 검사'의 실명을 공개한 혐의(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등)로 기소된 노회찬 진보신당 공동대표가 9일 오후 선고공판을 받기 위해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 왼쪽은 심상정 진보신당 공동대표.
연합뉴스 이정훈
노회찬의 삶은 평생 예리한 칼날 위를 걷는듯한 위태로운 행보였다.
노동자→노동운동가→노동정당→국회의원 당선→낙선→재선의 과정이 다르지 않았다. 한국 사회는 대체로 젊어서는 진보였다가도 중년 이후에는 보수가 되고, 어려울 때는 진보였다가도 신분이 바뀌면 보수화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는 달랐다. 초지일관이었다.
그래서 피할 수 있는 칼날을 받아야 했고 예리한 칼날 위를 걸어야 했다.
2005년 8월 18일 '떡값검사 7인'의 실명을 공개한 지 3년 6개월이 지난 2009년 2월 9일 서울중앙지법은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6개월, 자격정지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정치인에게는 사형선고와 같은 중형이었다.
재판부는 유죄판결 이유로 "피고인이 임의로 떡값 검사 7인의 명단을 작성해 공개한 것은 정치적 의혹제기의 표현이라고 보기 어렵고 허위사실을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어 위법성이 조각되지 않는다"면서, "피고인이 국회의원 신분이지만 자신의 홈페이지와 보도자료를 통해 떡값검사 명단을 공개한 것은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대상이 될 수 없다"라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일반적인 법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었다.
이 판결에 대해 노회찬은 "거대 권력의 횡포와 권력남용의 결정판이었던 안기부 X파일에 대해 진실을 밝힐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인 사법부가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하는 사람을 처벌함으로써 진실을 은폐하는 데 일조했다.……X파일 내용이 허위사실임을 알고서 공개했다고 판시한 데 대해 당시 온 국민이 진실로 믿었던 내용을 법원만이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면,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당연코 1심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었으며, 사법정의를 세우고자 항소했다. 김민전 앵커가 진행하는 SBS방송 인터뷰에서 소신의 일단을 밝혔다.
네. 정말 실망스러운 결과입니다. 저는 유감스럽고요. 이 사건의 본질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거대권력의 어떤 횡포, 남용, 이런 부분인데 이런 거대권력의 부정비리에 대한 수사는 제대로 하지 않고, 그런 사실을 알린 사람들을 차별하는 것은 그야말로 본말이 전도된 게 아닌가…그런 점에서 대단히 아쉬운 결과고, 좀 시정돼야 되겠다. 전 그런 생각 많이 갖고 있습니다. (주석 1)
전국 각지에서 탄원운동이 전개되었다.
X파일의 본질이 정ㆍ경ㆍ검ㆍ언의 검은 유착에 있었는데, 사법부의 판결 역시 이들의 유착성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고 시민들은 분개했다. 민주노동당(당시) 의원 전원과 민주당 의원 59명이 연명으로 탄원에 나섰다.
2차 공판을 앞두고는 자유선진당과 창조한국당까지 확장된 야당 의원들이 재판부에 공정한 재판을 요구하는 탄원에 참여했다.
정의당의 조승수 의원실은 부당한 판결에 대해 토론회를 열고, 사회를 맡은 서울대 조국 교수는 "X파일 자체가 우리 사회 부조리를 드러낸 것"이라며 "불법 행위를 폭로한 사람이 처벌 받고 불이익을 보는 것은 역설이자 모순"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