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2월 18일자 <한겨레신문>.
한겨레신문
북한 지도부 인사인 황장엽이 '우리들은 중국을 제외한 3자회담을 생각하고 있다'고 발언하면, 누구라도 '김정일이 3자회담을 생각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결국 황장엽은 '김정일이 중국을 배제하고 싶어한다'는 메시지를 흘린 셈이 된다.
황장엽은 그런 외교기밀을, 하필이면 일본인 교수들한테 흘렸다. 한반도 문제에 관해 중국과 경쟁 의식을 갖고 있는 일본인들한테 기밀을 넘긴 것이다. 가장 빨리 소문을 퍼트릴 사람들한테 기밀을 제공한 셈이다.
뒤이은 김정일의 격노... 황장엽은 왜?
언뜻 들으면, 황장엽이 김정일을 위해 정보를 흘린 듯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외세의 숫자를 하나라도 더 줄이고 미국과의 대화 시간을 늘리려는 김정일의 구상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고자, 그가 기밀을 흘린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김정일의 가려운 데를 긁어준 것처럼 비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황장엽의 기밀 누출은 김정일의 격노를 초래했다. 위의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황장엽은 김정일한테 심한 질책을 받았다. 황장엽의 누설로 인해 자신의 의도가 너무 일찍 공개되고, 이로 인해 외교적 혼선이 빚어졌기 때문에 김정일이 그런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앞서 언급한 C 경우(기밀을 모두 공개하기)처럼, 김정일의 3자회담 구상이라는 외교기밀이 황장엽의 언론 유출에 의해 생명력을 상실한 것이다.
황장엽이 왜 그런 일을 벌였는지는 1997년 2월 망명 뒤인 2006년에 펴낸 <황장엽 회고록>에서 잘 드러난다. 중국을 싫어하는 김정일을 곤란케 하려고 그랬다는 게 분명히 드러난다.
기밀 누설 사건이 있기 직전인 1996년 여름, 김정일(당시 54세)의 반중국적 태도 때문에 황장엽(73세)의 자존심이 손상되는 일이 있었다. 그 일화를 통해 김정일의 반중국 감정을 좀더 명확히 확인한 황장엽이, 국제 언론에 김정일의 반중국 입장을 흘려버린 것이다.
회고록에서 황장엽은 "1996년 여름, 나는 태국과 인도의 여러 정당들과의 관계를 발전시킬 목적으로 두 나라를 방문하게 되었다"라고 한 뒤, 김정일의 반중국적 태도를 고려해 여행 경로를 잡았다고 말했다. 기차로 중국을 경유해 태국·인도를 방문하되, 중국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지 않고 그냥 통과하기로 한 것이다.
"본래 나는 김정일이 중국을 좋아하지 않는데다 특히 내가 중국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꺼린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중국 측에 알리지 않고 그냥 태국과 인도로 떠난다는 것만 (중국 측에) 보고하자고 (나의 측근들에게) 주장했다."
그러자 노동당 국제부 중국담당 부부장이 제동을 걸었다. 중국을 통과하면서 중국 정부에 알리지 않으면 오해를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부부장에 관해 황장엽은 "그는 나의 친중국적인 태도만 이해하고, 김정일이 그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라고 말한다. 이런 논의를 전해들은 김정일은 다음과 같이 엄명을 내렸다고 한다.
"무엇 때문에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고 기차로 가는가? 중국을 거치지 않고 가도록 여행 계획을 다시 짜시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일 뿐만 아니라 주체사상 이론가인 황장엽이 김정일의 간섭 때문에 기차 여행 대신 비행기 여행을 택해야 했던 것이다. 황장엽의 체면을 구기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