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교육감 선거운동 기간에 찍은 사진. 전교조 반대운동을 경력으로 내세운 후보의 현수막.
김종성
1960년부터 교원노조 운동이 본격화된 한국의 경우에도, 노동운동의 여타 분야에 비해 교원노조운동에 대해서만큼은 국가와 보수세력의 압력이 매우 높았다. 국가권력과 보수세력이 그처럼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를 4·19 직전 상황에서 유추할 수 있다. 손호만 전교조 대구지부 참교육실장이 쓴 '교원노조 운동의 역사-4·19 교원노조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부정선거가 아니고서는 정·부통령 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판단한 이승만 정권은 정치적 의미가 컸던 대구에서의 선거운동에 많은 힘을 쏟았다. 수성천변에서 있었던 야당 대통령 선거유세에 학생들이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일요일날 등교를 지시했다.
학교마다 교사들은 갖가지 이유를 붙였다. 갑자기 중간고사를 앞당겨 친다거나(경북고), 전교생 토끼사냥을 나간다거나(대구고), 졸업식 예행연습을 한다(대구농고)는 등등 ······. 경북고를 비롯한 주요 고등학교 학생들은 이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를 감행했고 교사들은 이를 막기에 급급했다."
-민중행동이 2014년 발행한 <레프트 대구> 제8호.
1960년 당시에는 학생의 사회적 지위도 지금보다 높고, 학생운동의 영향력도 지금보다 강했다. 당시 사람들의 상당수는 1919년 3·1운동과 1929년 광주학생의거 등을 경험했다. 학생들이 사회변혁의 선두에 서는 모습을 목도했던 것이다.
거기다가 조선시대 성균관 유생들의 권당(등교거부 투쟁)이 발휘한 정치적 위력을 잘 아는 고령층도 상당수 남아 있었다. 그런 시절이었기 때문에 학생들의 선거 참여에 대해 이승만 정권이 그렇게까지 민감하게 행동했던 것이다.
그런 학생들의 의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들이 바로 교사들이였다. 교사들은 학생들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학부모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계급과 계층을 막론하고 전 국민의 의식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직업이었던 것이다.
프랑스에서 교원노조를 경계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교사들의 조직이 국가이념을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통로가 될 수도 있는 반면, 국가권력과 부르주아에게 불리한 이념을 유통하는 통로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승만 정권의 학생 동원에 억지로 협력했던 교사들 사이에서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교사가 국가 및 보수의 이념을 전달하는 통로가 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목소리였다. 이런 목소리는 대구·경북에서 특히 강하게 나왔다. 이 지역 교사들은 교원노조 결성을 통해 권력의 압력에 맞서고자 했다. 학생들을 국가와 자본의 간섭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했던 것이다.
대구·경복 교사들이 중심이 된 이런 움직임이 4·19 혁명 과정에서 교원노조 결성 운동으로 이어졌다. 전국교원노동조합 대표자대회가 그해 7월 3일 대구에서 개최되는 성과로 연결된 것이다.
이런 흐름을 지켜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대동소이했다. 프랑스 국가권력 및 부르주아의 시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승만 하야 직후의 허정 과도정부뿐 아니라 4월혁명 수혜자인 민주당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이승만 정권 하에서 외무장관이 된 뒤 대통령권한대행을 맡은 허정뿐 아니라 민주당 정권을 이끈 장면 총리도 교원노조를 불법단체로 취급했다. 교원노조운동을 주도한 경북 교원노조에 대해 장면 내각은 이런 반응을 보였다. 위 논문에 나오는 글이다.
"장면 정권은 8월 22일 조각 후 이루어진 첫 국무회의에서 경북교조의 건을 문교정책의 첫 과제로 다룰 수밖에 없었고, 8월 24일에는 경북교조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이례적으로 심야 국무회의를 열기도 했는데"
민주당 정권은 이미 출범한 교원노조를 불법화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교원노조를 불법화하는 벙법안을 상정"하기까지 했다고 위 논문은 말한다. 교사들을 국가이념의 전파 수단으로 생각하는 점에서는 이승만 정권과 별반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1961년 5·16 쿠데타 이후의 박정희 정권도 이 문제에 관한 한 전혀 다를 바 없었다. 위 논문은 이렇게 말한다.
"쿠데타 5일째 되는 날, 치안국에서는 '용공분자 2천 명 구속'이라는 발표를 하는데, 당시 파악된 교원노조의 연행자 수는 1500명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전체 구속자의 4분의 3이 교원노조의 조합원이었다고 추측할 수 있는데, 이는 당시 그 어느 단체와도 비교할 수 없는 수치였다."
인간화 교육이 실현되려면
교원노조에 참여하는 교사들을 용공분자로 간주했다는 것은 보수적 국가권력이 교사 조직을 얼마나 위험시했는지를 보여준다. 국가권력이 교원노조를 그처럼 견제하는 것은, 교육을 국가이념의 전파 수단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을 제공할 목적이 아니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을 주입할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교원노조에 대해 불필요하고 과도한 개입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전교조 합법화가 단순히 교육 민주화를 위해서뿐 아니라 인간다운 삶의 실현을 위해서도 절실히 필요함을 보여준다. 국가와 자본이 자기 뜻을 국민에게 주입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자기 뜻을 국가에 주입하는 시대가 되려면, 전교조가 합법화되어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전교조 전국노래패연합이 부른 '참교육의 함성으로'에 "굴종의 삶을 떨쳐 기만의 산을 옮기고/ 너와 나의 눈물 뜻 모아 진실을 외친다", "아! 우리의 깃발 교직원 노조 세워 민족민주 인간화 교육 만만세"라는 가사가 있다. 이 노래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전교조 합법화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굴종의 삶을 벗어나 진실을 접할 수 있고,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인간화 교육에 다가가게 만드는 기본 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인간화 교육이 실현되려면, 교사들이 국가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으면 안 된다. ILO 핵심협약의 국회 비준동의 및 관련법 정비는 물론이고 전교조 합법화 역시 조속히 추진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나경원 원내대표의 염려처럼. 이번 조치가 '전교조 합법화 플랜'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16
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