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순 명창
한명순 소리예술원
평안도와 황해도에서 발달한 민요나 잡가를 일컫는 '서도소리'는 소리의 발원지인 북한에서도 이미 그 명맥이 끊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분단 이후 71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통일의 봄을 기다리며 한명순 명창은 노래한다. 전수받은 소리를 전함에 그치지 않고, 더 높은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다. 옛 소리 복원을 통해 과거의 얼을 오늘에 되살리고, 후학 양성에 매진하면서 전통이 후대에 이어질 수 있도록 '소리의 길'을 닦아나가는 그녀를 지난달 22일에 만났다.
올곧은 길로 이끌어준 은사와의 만남
"우리 때만 해도 '얘는 이거 아니면 할 게 없어!' 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재능을 타고났다는 사람들만 이 길을 갔어요. 누구에게나 문이 열려있던 시대가 아니었죠. 요즘은 학원도 있고, 지역 내 문화센터에만 가더라도 소리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만요."
충남 청양에서 5남 2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던 그녀는 일찍부터 노래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는 칭찬을 들으며 어른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아버지가 광부셨는데 시조나 노랫가락을 그럴싸하게 잘 읊는 한량(閑良)이셨어요. 옆에서 보고 들으면서 그 영향을 자연스럽게 받지 않았나 싶어요. 제가 4살 되었을 무렵부터 한복 입혀서 업고 다니면서 소리를 시키셨대요. 친척들도 그렇고, 동네 사람들도 저만 보면 유행가나 민요를 불러달라고 하곤 했죠."
초등학교 졸업 이후 기울어진 가세 때문에 학업을 지속하기 어렵게 되자, 집안 농사일을 도우며 가수의 꿈을 키워가게 된다. 마땅한 학원이나 교재가 없던 시절, 그녀가 가진 유일한 스승은 라디오였다. 방송을 타고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따라 부르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였기 때문이다. 가수가 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다 떠올린 것도 라디오였다. 1975년 9월, KBS 라디오 프로그램 '민요백일장'의 공개방송에 참가한 그녀는 <매화타령>을 불러 2등상인 인기상을 받는다.
이때 그녀를 눈여겨 본 사람이 있었으니,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보유자인 김정연 명창이었다. 후계자를 애타게 찾던 김 명창에게 그녀는 될성부른 떡잎임에 틀림없었다. 김 명창은 자신의 곁으로 온다면 먹여주고, 재워주며 학교까지 보내주겠노라 말하며, 부모가 허락한다면 편지를 쓰라고 명함을 건넨다.
때마침 찾아온 기회를 놓칠 수 없던 그녀는 반대하는 가족들을 설득해 김 명창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 명창은 당시 귀했던 브리샤 승용차를 타고 서울에서 청양까지 내려온다. 제자를 맞이하기 위해 먼 길을 한달음에 달려온 셈이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스승의 차에 올라탔고, 그날 이후로 고된 서울살이가 시작됐다.
"선생님 몸종이나 다름없었죠. 빨래부터 시작해서 청소, 버선 다리기, 동정 달기, 선생님 어깨 주무르기 등의 일을 다 해내야했으니까요.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죠. 돌아갈 수도 없고, 아는 것이라고는 소리 밖에 없으니 꼼짝없이 따를 수밖에요. 선생님은 노래뿐만 아니라, 소리꾼으로 갖춰야 할 예의범절에 대해서도 엄격하게 가르치셨어요. 특히 서도소리는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 한자로 된 가사가 많은 만큼, 천자문도 공부하게 하셨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