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거사2007년 11월 9일 서울종합청사 앞 소방관들의 열악한 근무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고진영
2007년 11월 9일 45회 소방의 날 서울정부종합청사 앞에서 '119거사'라는 집회가 있었다. 두 명의 소방관이 발목에 쇠구슬을 차고 거드름을 피우며 앞서 걷는 사람을 뒤따르고 있다. 소방관들의 등에는 '현대판 노예'라 쓰여있었고 앞서 걷는 사람 등엔 '행정자치부'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그랬다. 2007년 소방관들은 자신을 "현대판 노예"라고 불렀다. 그들의 주장은 과장됐을까. 2007년 당시 기준 한 해 평균 9.8명이 순직하고 공상자 302명 발생했다. 현장에서 자신을 보호해줄 개인장비는 자신들이 사서 써야 했다. 철물점에서 쉽게 사 쓸 수 있는 농업용 고무장갑을 낀 채 자신의 목숨을 걸고 화재 현장에 뛰어들었다.
'나 홀로 소방관'이란 유행어를 낳기도 했던 소방관 혼자 근무하는 지역대는 전국 444개소나 되었다. 이로 인해 2008년 2월 26일에는 혼자 근무하다 화재진압에 나선 고 조동환 소방관이 순직했다. 소방관과 같은 제복근무자가 3교대를 실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소방관들은 24시간 교대근무를 하고 있었고 휴일엔 각종 비번 활동으로 동원되어야 했다.
이렇게 일했음에도 소방관들은 초과근무 수당조차 받지 못했다. 결국 2009년 소방공무원들은 자신들의 임용권자인 각 시·도지사를 상대로 전국 5000억 원이 넘게 지급되지 못한 수당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시작했다. 10년이 지난 2019년 지금도 이는 결론을 내지 못하고 진행 중이다. 자신을 스스로 "현대판 노예"라고 칭해야만 했던 소방관들의 자괴감은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의 삶이자 생존권을 보장받고자 했다.
외면에 비하까지... 소방관들의 요구는 방치됐다
이러한 상황이 될 때까지 당사자인 소방관과 정부, 실질적인 책임이 있는 시·도지사는 무엇을 했을까. 우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소방관들이 나섰다. 노조는 물론 및 직장협의회조차 설립 운영하지 못하는 소방관들은 궁여지책으로 2006년 5월 '소방발전협의회'라는 동회를 만들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소방인력확충, 3교대 실시, 소방직장협의회 설립 허용, 국가 예산의 특별교부세 지원 등 소방관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소방관들의 노력에 정부 기관과 시·도지사의 반응은 어땠을까. 한마디로 '소 귀에 경 읽기'였다. 특히 시·도지사의 모르쇠는 더욱더 심했다. 부족한 예산이기는 하지만 소방공무원의 인력을 충원하라고 국가에서 내려보낸 인건비 예산을 타 용도로 전용하는 시도가 허다했다.
부산시는 2007년 총액인건비 소방공무원 충원 명분으로 지방교부세 400억 원(소방공무원 2000명)을 받고도 단 한 명의 소방공무원도 채용하지 않았다. 심지어 부산시청 한 공무원은 "사람만 늘려 3교대로 만들어 죽치고 가만히 놔두면 딴짓만 한단 말이에요"라는 발언으로 소방관들을 분노케 했다. 급기야 서울 김종열 소방관이 부산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