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의 신발 정치가 아닌 정책으로 진보정당을 지켜낸 故 노회찬의원, 수년전 시청앞 천막농성장에서 무지개빛 신발끈을 고쳐매고 있다.
정기석
서울에 온 노회찬은 종로의 대성학원에 다니면서 재수를 한다. 학원에서는 1등 하는 학생에게 매달 2만원가량의 학원비를 면제해주었다. 그는 졸업 때까지 학원비를 면제받고, 집에서 보내준 학원비는 영화를 보거나 책을 샀다. 그때 산 책이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와 월간지 『다리』, 『씨알의 소리』, 『사상계』 등 진보적인 책이고, 『중국공산당사』도 포함되었다. 재수 시절에 이런 책들을 읽을 정도로 그는 조숙한 청년이 되었다. 영화를 좋아하여 개봉영화는 빼놓지 않았다.
갈 데가 없고 혼자였으니까 책방에 많이 갔어요. 그때는 교보문고도 없을 때였고, 아, 광화문에 범우사가 있었고, 종로서적은 고1 때부터 갔고요. 학원이 광화문에 있었기 때문에 그 범주를 많이 안 벗어났어요. 그때 알게 된 책이 『다리』라는 잡지였는데 그걸 매개로 해서 조금 조금씩 넓혀간 거예요. 그거 보니까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 10월 유신, 10월 유신이 내가 재수할 때였어요.
너무 놀라서, 그때 시험문제에 자주 나오던 일이었기 때문에, 대통령제에서 국회해산은 안 된다. O냐 X냐, 이런 거. 국회 해산했다고 라디오에서 들리니까 집에 와서 책 찾아보고, 내가 알던 대로라면 국회해산을 할 수 없다고 되어 있는데, 방송에선 방금 들었고, 그래서 국회로 갔죠.(주석 8)
노회찬이 재수를 하고 있던 1972년 10월 박정희가 친위쿠데타를 일으켜 국회를 해산하고 언론을 통제하면서 한국식 총통제를 만들었다. 학원의 시험문제에는 대통령이 국회를 해산시킬 수 없다는 것인데, 뉴스는 해산했다고 보도했다. 궁금해진 그는 광화문에서 버스를 타고 여의도에 가서 국회 앞에 탱크가 진주하고 사람들의 출입이 통제된 실태를 직접 지켜보았다. 충격이었다.
6살 때 겪은 5ㆍ16쿠데타는 그것이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나이였고, 초등학교 때부터 들어서 머리에 박힌 '대통령 박정희'는 조선시대의 왕(임금)처럼 인식되었는데, 17살 재수생의 눈에 비친 유신쿠데타는 실체가 보이는 것 같았다. 그동안 접했던 『다리』,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 그리고 얼마 전에 폐간된 『사상계』의 책갈피에서 읽은 지식으로 눈이 트인 것이다.
노회찬의 독서 범위는 날로 넓어졌다. 『서양철학사』를 탐독하고 이어서 각종 사상서를 읽었다. 학원 공부는 뒷전이고, 많은 교양서적을 탐독했다. 그런데도 매달 치른 시험은 1위를 유지하였다.
주석
6> 앞의 책, 42쪽.
7> 앞의 책, 43쪽.
8> 앞의 책, 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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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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